“사장님… 여기 주문하신 라떼 두 잔, 맞죠?”
익숙한 목소리에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무거운 커피 머신 소리와 잔잔한 재즈 음악이 깔린 조용한 카페 한구석. 문 앞엔 그가 있었다. 6개월 만이었다.
“민석 씨…”
그의 이름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한때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의 카페로 커피를 배달하던 남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사람. 그리고 지금, 다시 돌아왔다.
1. 작고 따뜻했던 시작
윤서는 서울 외곽의 조용한 골목에서 ‘루프레소’라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일상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배달기사 민석이었다.
"요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에요?"
"네. 한 잔은 제가 마시고, 한 잔은… 그냥 놓여있게요."
"혹시… 누가 올지도 모르니까요?"
그 짧은 대화 속에 은근한 감정이 섞여 있었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선을 넘지 않았다. 혹시나 상대가 불편해질까, 혹은 자신이 착각일까 봐. 그렇게 오가는 커피와 말 한마디에 둘은 조용히 서로를 담아갔다.
2.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그가 사라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느 날부터 앱에 다른 배달원의 이름이 떴고, 윤서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냥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에 담긴 그리움이 점점 짙어졌다.
문득 주문지에 남겨진 민석의 마지막 메모를 떠올렸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다음엔 제가 사 드릴게요."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3. 다시 마주한 순간
6개월 후, 봄이 오려는 3월의 어느 오후. 문이 열리고, 민석이 다시 나타났다.
“잠깐 들렀어요. 이 근처 다시 맡게 돼서.”
“…정말요?”
“네, 다시 여기를 배달 구역으로 신청했어요. 혹시… 그게 실례가 아니면.”
윤서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전히 커피 내리는 손놀림은 익숙했지만, 마음은 전보다 훨씬 복잡했다.
“왜 말 없이 가셨던 거예요?”
“그땐… 나도 정리가 안 됐어요. 좋은 제안이 있었고, 당신한테 실망 줄까 봐 말도 못 하고 갔어요.”
“그럼 왜 돌아왔어요?”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냥… 당신이 보고 싶어서요. 사실은, 매일 생각났어요. 당신 커피 맛도, 그날의 공기도, 당신 목소리도.”
4. 엇갈리는 마음
윤서는 민석의 말에 흔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속이 상했다. 무작정 떠났던 그를 향한 서운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정말 많이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기다리게 만든 게 아니라, 말조차 안 했던 게 더 미웠어요.”
민석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조용히 말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천천히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친구든 뭐든.”
윤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커피를 바라보며 속으로만 말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5. 다시 배달되는 마음
그날 이후, 민석은 매일 카페에 들렀다. 때로는 손님으로, 때로는 배달 기사로. 그리고 윤서는 예전처럼 다시 그를 반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윤서는 메모를 하나 적어 그의 커피 컵 홀더에 붙였다.
"그날 약속했던 거, 오늘 이 커피로 받아들이면 돼요?"
민석은 그 메모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카페 문을 열며 되물었다.
“그럼, 다음은 제가 밥 사 드려도 되는 거예요?”
윤서는 부끄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6. 오픈 결말의 또 다른 시작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정의되지 않았다. 아직 고백도, 사귀자고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매일 커피를 나누고, 때때로 눈을 마주치며 웃을 뿐.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 사이엔 여전히 따뜻한 감정이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윤서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은 한 번 사라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가끔은, 먼 길을 돌아 다시 배달되어 오기도 하니까.
[마무리 문장]
그리고 그날 이후, 커피 주문란엔 이런 문장이 함께였다.
“커피 두 잔. 한 잔은 늘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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