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오늘도 똑같이 주세요. 고기 무한리필로.”
“김치볶음은 매운 거 괜찮으시죠? 오늘은 조금 더 맵게 나가요.”
서울 외곽, 번화가 뒤편에 자리한 작은 고깃집 ‘무한정’. 정갈한 인테리어와 조용한 분위기로 숨은 단골들을 불러 모으는 이곳의 사장, 수연은 손님보다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중, 그녀가 절대 잊지 못한 단골이 있다. 1년 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그 남자. 말수 적지만 인사는 빠짐없던 손님, 준호.
그가 마지막으로 왔던 날도 평소처럼 웃고, 밥을 먹고, “다음 주에 뵐게요”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후로 다시 오지 않았다.
💔 한 접시에 담기지 않았던 감정들
“사장님, 혹시 오늘도 혼자 드시고 가세요?”
“네. 혼자 먹는 게 편해서요.”
수연은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유난히 더 조용해졌다. 그가 앉던 3번 테이블엔 일부러 다른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냥, 혹시라도 그가 다시 올까 봐.
어느 날, 알바생이 말했다.
“사장님, 그 단골 아저씨 있잖아요. 매번 혼자 오셨던 분. 요즘 안 보이네요?”
“응… 출장 갔을 수도 있고, 뭐 그럴 수도 있지.”
“사실… 좀 설레었어요. 두 분 말 진짜 별로 안 하는데, 눈빛이 이상하게 따뜻했잖아요.”
수연은 그 말에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쓴맛이 묻어 있었다. 마음이란 게 꼭 말이 많아야 전해지는 건 아니니까.
📦 재회, 무심한 듯 다정하게
그리고 어느 금요일, 문이 열렸다. 수연은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예전보다 살이 조금 빠졌고, 머리는 짧아져 있었다.
“여기… 자리 있나요?”
“있죠. 항상 있죠.”
그는 조용히 앉아 예전처럼 말했다.
“무한리필 하나요. 김치볶음도 부탁드릴게요. 그 매운 걸로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문했고, 수연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 적었다. 하지만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 다시 시작되는 대화
그가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그동안 못 왔어요. 갑자기 이직하고, 지방 근무지로 발령나서…”
“말씀 안 해주셔서 좀 놀랐어요.”
“말하려다가… 이상할까 봐. 손님 주제에 뭘 그렇게까지 얘기하나 싶었죠.”
수연은 웃으며 고기를 뒤집었다.
“근데 그 손님이 안 오니까, 이상했어요.”
그 말에 준호도 웃었다.
“사실… 그날 이후로 후회 많이 했어요. 말 한마디라도 남기고 나올걸.”
☕ 감정도 무한 리필될 수 있을까
준호는 그날 식사가 끝난 후에도 가게를 나가지 않았다. 수연이 뒷정리를 끝내고 테이블에 앉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 앞으로 자주 와도 될까요?”
“여기야 원래 단골 환영이죠.”
“그게… 밥 말고, 감정도 무한리필되나요?”
수연은 순간 멈췄다. 그 말은 단순한 농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진심이 묻어 있었다.
“리필… 되긴 해요. 근데 맛있게 익힐 시간은 좀 걸려요.”
준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천천히 익혀볼게요. 이번엔 오래도록 남을 수 있게.”
📖 오픈 결말의 또 다른 페이지
그들은 그날 이후 매주 금요일, 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었다. 여전히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눈빛은 더 자주 마주쳤고, 웃음은 자주 번졌다.
그리고 어느 날, 수연은 메모지를 쥐어주었다.
“김치볶음 맵기 조절 가능해요. 그리고 감정도… 조절 가능하죠. 너무 뜨겁지만 않다면, 오래 데워도 괜찮아요.”
준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저 오늘은 뜨겁게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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