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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내장산의 붉은 노을, 그리고 마침내 온기를 품은 크리스마스

진이와 금홍의 계절 이야기, 그 마지막 대단원입니다.[제2회]의 높고 푸른 가을을 지나, 내장산의 붉은 단풍 속에 담긴 깜짝 선물 같은 순간과 다가올 겨울 크리스마스의 샛별처럼 빛나는 온기를 그려냅니다. 1. 깜짝 선물: 내장산, 붉게 타오르는 터널 속에서10월의 끝자락, 가을이 가장 짙게 익어가던 주말 아침. 진이는 금홍의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찾아갔다. 주말에 차 한잔하자던 진이의 말에 편안한 차림으로 나온 금홍은 차 뒷좌석에 실린 작은 여행 가방과 따뜻한 핫팩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진이 씨, 이거 다 뭐예요? 우리 어디 가요?" "오늘 하늘이 유난히 맑잖아요. 금홍 씨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계절의 끝이 있어요."진이가 금홍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전북 정읍의 내장산이었다.차문이 열리자마자 펼쳐..

[제2회]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 계절의 결을 따라 깊어진 우리

1.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소리지독했던 2026년의 월복이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9월의 중간쯤에 들어서자 도시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습기를 가득 품었던 공기는 점차 건조하고 깨끗해졌고, 퇴근길 뺨을 스치는 바람에는 기분 좋은 서늘함이 묻어났다.진이는 사무실 창문을 크게 열어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눈이 부시게 높고 푸르다."그것은 단순히 날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금홍을 만난 이후, 진이의 세상은 사소한 풍경 하나까지도 입체적이고 청량하게 변해 있었다. 여름내 자신을 짓누르던 업무의 중압감과 무기력함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금홍과의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설렘이 빽빽하게 채워졌다.약속했던 '하늘이 높아지는 날', 두 사람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장소인 하늘공원 억새밭에서 만나기로 했다.2. ..

[제1회] 38도의 월복(越伏), 마침내 너라는 바람이 불어왔다

1. 2026년 8월, 멈춰 버린 도시의 시간2026년의 여름은 유난히 지독했다. 초복과 중복을 지나며 사람들은 이미 지쳐 있었지만, 진짜 고비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무려 20일이나 벌어지는 '월복(越伏)'이라는 이름의 아스팔트 뜨거운 열기 속에 숨어 있었다.8월 14일, 말복을 불과 며칠 앞둔 서울의 거리는 마치 거대한 오븐 내부 같았다. 습기를 듬뿍 머금은 뜨거운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텁텁하게 압박해 왔다.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눈을 낮추고 바쁜 걸음을 옮겼지만, 그 더위는 그늘조차 뜨겁게 달궈놓고 있었다.진이는 서교동 골목길 구석에 위치한 작은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에서는 수증기가 맺혀 송글송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이놈의 더..

To금홍이에게

그늘 한 점 없이 맑은 얼굴로 세상 모두를 향해 웃어주던 금홍아. 환하게 부서지는 그 미소 뒤편에, 비만 오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던 네 지독한 외로움과 슬픔을 이제야 온전히 들여다본다. 어쩌면 그동안 겉으로 보여준 그 찬란한 밝음은, 네 안의 어둠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틀어막고 있던 필사적인 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은 늘 네가 주는 에너지를 당연하게 받아먹으면서, 정작 네 마음에 어떤 그늘이 자라고 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지. "금홍이는 늘 밝아서 좋아", "금홍이는 걱정이 없어서 부러워"라는 무심한 말들이, 오히려 네 입을 더 굳게 닫게 만들었을 거야. 남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혹은 내 아픔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올 가벼운 동정이 두려워서, 너는..

11화 비오는 날 20260701 광주

후두둑, 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거셌다. 평소라면 "곰아! 점심 뭐 먹을까?" 하며 작업실 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혔을 금홍이었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소식이 없었다. 방돼곰은 굳게 닫힌 금홍이의 방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기타를 품에 안았다. 툭, 퉁. 둔탁한 코드가 작업실의 공기를 채웠다. 그때, 웅크린 실루엣의 금홍이가 거실로 털썩 걸어 나와 소파에 몸을 묻었다. 평소의 생기는 어디로 갔는지, 얼굴에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곰아."금홍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방돼곰을 불렀다. "어, 금홍아. 깼어? 배는 안 고파?"방돼곰이 기타 줄을 잡던 손을 멈추고 다정하게 물었다. "응, 별로……. 그냥, 비가 오니까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머리도 무겁고, 가슴 속에..

10화[해 질 무렵, 주황빛 노을이 길게 드리운 방돼곰의 방]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이리저리 만지던 금홍이가 한숨을 푹 쉽니다. 그 옆에서 방돼곰은 웬일로 좋아하는 치토스 봉지도 뜯지 않은 채, 침대 한구석에 웅크려 먼 산만라보고 있습니다. 소심한 방돼곰의 넓은 등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쓸쓸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죠. 금홍: (건반을 띵- 누르며 방돼곰을 돌아본다) 야, 방돼곰. 너 오늘 왜 그래?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치토스를 앞에 두고 뜯지도 않고, 무슨 사춘기 소년처럼 감상에 젖어 있어? 방돼곰: (깊은 한숨을 푸하- 내쉬며 이불을 더 끌어당긴다) 금홍아... 묻지 마. 내 마음에 잔인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아직 6월인데 내 마음은 한겨울 한파야. 금홍: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또 시작이네, 또. 이번엔 뭐가 무서운데? 겨울 추위?..

카테고리 없음 2026.06.28

9화[일요일 오후, 여전히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방돼곰의 방]

평화롭게(?) 침대 위에 둥글게 굴러다니며 치토스를 씹던 방돼곰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욕실 문이 열리며 뿜어져 나오는 눅눅한 수증기,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무시무시한 물소리. 그렇습니다. 오늘은 일주일 중 방돼곰이 가장 두려워하는 날, 바로 ‘금홍이가 머리 감는 날’입니다. 소심한 방돼곰은 벌써부터 온몸이 간지러워지는 착각에 시달리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씁니다. 하지만 잠시 후, 거대한 수건을 양 돌풍처럼 머리에 두른 금홍이가 위풍당당하게 방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금홍: (수건을 탁 탈며 젖은 머리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아후, 시원하다! 야, 방돼곰! 너 또 이불 뒤집어쓰고 과자 먹지? 내가 머리 감는 동안 방 좀 환기하라고 했잖아! 방돼곰: (이불 속에서 잔뜩 기가 죽은 목..

8화[방돼곰의 방, 여전히 매미 소리가 매서운 한여름의 오후]

방구석 한편에 놓인 디지털 피아노 앞에 금홍이가 앉아 있습니다. 그 옆에는 여전히 이불을 칭칭 감싼 방돼곰이 산더미 같은 치토스 박스 사이에 묻혀 있죠. 금홍: (건반을 도-미-솔 가볍게 누르며 건조하게 한숨을 쉰다) 하아... 야, 방돼곰. 내가 너 겨울 벌크업 하는 거 다 좋은데, 이 찜통더위에 창문 닫고 과자 씹는 소리만 들으니까 내 예술적 영감이 아주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다. 방돼곰: (치토스 봉지에 깊숙이 앞발을 밀어 넣으며) 바스락- 금홍아, 원래 진정한 예술은 고난과 결핍에서 나오는 거야. 이 34도의 열기와 내 겨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 치토스가 내뿜는 치명적인 향기! 이게 바로 영감의 원천이지. (치토스를 하나 꺼내 입에 넣는다) 와작! 금홍: (갑자기 건반을 누르려던 손을 멈..

7화[몇 봉지째 비워지는 치토스, 방 안은 온통 고소하고 매콤한 냄새로 가득하다]

금홍: (손가락에 묻은 치토스 가루를 슥 닦아내며) 야, 방돼곰. 근데 너 진짜 겨울 되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갈 기세다? 저기 쌓인 박스만 봐도 봄까지는 버티겠어. 방돼곰: (입안 가득 치토스를 우물거리며) 당연하지. 겨울의 외출은 목숨을 건 모험이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어우, 상상만 해도 발가락 끝이 시려. 그래서 미리 방을 '치토스 요새'로 개조해 둔 거야.금홍: (피식 웃으며) 요새는 무슨 요새. 그냥 과자 창고지. 야, 근데 하루에 두 봉지만 먹으라는 약속, 진짜 지킬 수 있어? 너 지금 벌써 세 봉지째 뜯으려고 손가락 꼼지락거리는 거 금홍이 눈에 다 보이거든? 방돼곰: (새 봉지를 잡으려던 손을 멈칫하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 이건 그냥 손가락 스트레칭이야!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