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 속 무대를 다시 밝히는 두 사람의 이야기
[1. 그날, 낡은 TV에서 시작된 이야기]
“얘야, 채널 좀 돌려봐. 6번으로.”
“왜요? 요즘 거기 아무것도 안 해.”
“아니야. 오늘 '트로트 레전드 무대' 나오는 날이야.”
툭툭,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젊은 시절 아빠였다.
하늘색 양복, 촌스런 나비넥타이,
그리고 약간 어색한 눈웃음.
“와… 진짜 아빠야?”
“응. 1994년, 군부대 행사 무대.”
“와… 그때 머리숱 장난 아닌데요?”
“야…”
그 무대엔 지금보다 훨씬 긴장한,
그러면서도 빛나던 아빠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내 마음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소망이 피어났다.
‘저 무대, 다시 세워드릴 수 없을까?’
[2. 아빠, 다시 무대에 서보지 않을래요?]
“아빠, 방송 나가볼래요?”
“뭐? 무슨 방송?”
“지역 방송에서 가족 듀엣 무대 신청 받는대.
아빠랑 나랑, 우리 앨범에 있던 그 곡으로 나가면 어떨까 해서…”
“…방송?”
“응. 당신의 무대, 우리가 다시 만들어요.”
잠시 침묵하던 아빠는 물었다.
“나… 지금 목소리 별론데 괜찮겠어?”
“노래는 음정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던 사람 누구더라?”
아빠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딱 한 번만 더.”
[3. 연습보다 기억이 앞섰다]
무대 준비를 하며
우린 예전 앨범 트랙을 다시 꺼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걱정 말아요 그대’
‘엄마의 자장가’ 같은 노래들.
녹음 당시엔 떨리기만 했던 곡들이
이제는 입술에 자연스럽게 얹혔다.
“우리, 그때보다 더 잘 맞는 것 같지 않아요?”
“그땐 네가 딸이었다면,
지금은 너도 내 무대 파트너야.”
그 말에 울컥했다.
아빠와 나 사이에 ‘음악’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생긴 거였다.
[4. 리허설 날, 우리만 떨었다]
작은 방송국 스튜디오.
PD는 대본을 나눠주며 말했다.
“카메라 들어가면 가볍게 멘트 치시고, 노래 시작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오늘 생방이거든요~”
“예…? 생…생방…이요?”
우리 둘은 동시에 눈이 커졌다.
아빠는 이마에 땀을 삐질 흘렸고
나는 심장이 ‘쿵짝쿵짝’ 이상한 리듬을 탔다.
“괜찮아, 딸.
어차피 틀리는 거엔 익숙하잖아.”
“맞아요, 아빠.
틀리는 것도 우리 스타일이죠.”
그리고 둘은 동시에 웃었다.
리허설은 엉망이었지만
우리 마음은 맞춰져 있었다.
[5. 생방송,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난 시간]
"지금 무대에는
한때 트로트 가수셨던 아버지와,
그 딸의 감동적인 듀엣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PD의 멘트가 끝나고
조명이 우리를 비췄다.
그 조명은 낯설었지만,
오히려 따뜻했다.
기타 전주가 흐르고,
아빠가 첫 소절을 불렀다.
“그대 없인 단 하루도…”
그 순간,
나는 아빠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여전히
1994년 무대의 빛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어받았다.
“내 맘 깊은 곳엔
그대 목소리…”
음정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어떤 박수는 기억에,
어떤 박수는 진심에 주어졌다.
[6. 방송이 끝나고 찾아온 메아리]
방송이 끝난 날,
SNS에 한 댓글이 눈에 띄었다.
“저도 아버지가 옛날 행사 가수셨는데,
오늘 그 시절이 생각나서 울었어요.
두 분, 정말 아름다운 무대였습니다.”
또 어떤 메시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무대에 한 번도 못 서봤어요.
두 분이 부러워요.”
나는 그 댓글들을 하나하나
아빠에게 소리 내어 읽어드렸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작게 말했다.
“…고맙다, 딸.”
[7. 다시는 서지 못할 줄 알았던 무대에서]
“그때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무슨 생각 했어요?”
“예전에는 항상,
‘내가 가수 맞나?’
‘왜 이렇게 떨리지?’
그런 생각만 했거든.
근데 이번엔,
‘이제야 내가 진짜 가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왜요?”
“이번 무대는 누군가와 함께였잖아.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아빠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엔,
마이크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8. 무대는 끝났지만, 노래는 계속된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자주 노래를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아빠와 나 사이엔
그 무대가,
그 순간이,
항상 마음속에 재생되고 있다.
아빠는 여전히
식탁에서 흥얼거리고,
나는 가끔 부엌에서 화음을 얹는다.
그건 방송용 무대보다
훨씬 더 따뜻한 ‘우리만의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은
언제나 옳은 타이밍에
내 마음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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