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 우리 둘의 첫 앨범, 소리로 남긴 사랑

히야121 2025. 6. 24. 01:08

― 노래는 못해도, 사랑은 잘 부르는 사이


[프롤로그: 앨범이 뭐라고요?]

“우리… 앨범 낼까?”

“아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고.
음원사이트에 올리자는 건 아니고,
그냥 우리 둘만의 CD 같은 거.
우리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라니, 그건 진짜 가수들이 내는 거잖아.”

“넌 이제 가수 딸이잖아.
가수+딸=가딸.”

“…그 유머는 절대 앨범에 넣지 말자.”


[1. 녹음실, 그 낯선 공간]

작은 녹음실.
방음재가 덕지덕지 붙은 벽,
마이크 하나, 헤드폰 둘.
아빠는 익숙하게 입을 풀고,
나는 숨을 멈췄다.

“떨려?”

“아니요, 그냥… 못할까 봐요.”

“노래는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진심만 담으면 돼.
우린 음악을 ‘사는’ 사람들이니까.”

아빠의 말은 늘 멜로디 같았다.
단조롭지만 깊이 남는, 오래된 가사처럼.


[2. 첫 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가 처음 녹음한 곡은
이적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 노래, 우리 첫 산책 때 틀었던 거 기억나?”

“그때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들었었지…”

“그래. 그날부터 우리 대화가 달라졌어.”

마이크 앞에 서서 나는
음이탈을 세 번이나 했다.
하지만 네 번째 테이크.
나는 웃으며 말했다.

“틀려도 돼요. 어차피 이건 우리만 들을 거니까요.”

그 순간 아빠가 말했다.
“그래. 사랑도 그래. 틀리면 어때. 우리만 알아주면 되지.”


[3. 두 번째 트랙, 아빠의 자작곡]

“이건 옛날에 네 태명 지을 때 만든 노래야.”

“…진짜요?”

“너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비 오는 날이면 꼭 이 노래 불렀어.”

아빠는 기타를 치며 불렀다.
가사는 단순했다.
‘너는 꼭 웃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엄마의 손, 아빠의 맘
그 안에서 잠들 수 있는 그런 아이’

노래가 끝났을 땐,
녹음실 안이 조용했다.
마이크 너머로
내가 코 훌쩍이는 소리가 그대로 담겼다.


[4. 우리의 앨범 제목은…]

“앨범 제목 뭐로 할까?”

“흠… ‘음치와 가수’ 어때요?”

“너무 현실적이잖아. 낭만이 없어.”

“‘소리로 남긴 사랑’은 어때요?”

“…그거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누구에게 팔릴 것도,
유튜브 조회수가 터질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정확히 울려 퍼진 진심이었다.

이 앨범은 팔기 위한 게 아니라
남기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5. 마스터링이라는 신세계]

“이제 마스터링 해야지.”

“그건 또 뭐야… 파마 종류야?”

“음질 정리하는 작업.
노래를 예쁘게 다듬는 거야.”

“제 노래가 예뻐질 수 있을까요…?”

“그럼. 사랑이 담겼잖아.”

우리가 마스터링을 끝낸 날,
노래가 이어지듯
아빠와 나의 추억도 정돈되어 갔다.

예전의 오글거림도,
처음의 삐걱임도
모두 예쁘게 다듬어졌다.


[6. 첫 CD 완성]

하얀 케이스에
직접 프린트한 커버 사진.
아빠는 글씨를 쓰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못 부른 앨범일 수도 있지만,
가장 많이 웃으며 만든 앨범이기도 해.”

나는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사랑이 가장 크게 들리는 앨범이기도 해요.”

우리의 첫 앨범,
총 5트랙.
한 곡마다 웃음 3번,
울컥함 2번,
그리고 ‘우리’가 들어 있었다.


[7. 앨범을 듣는 밤]

그날 밤,
아빠와 마주 앉아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아빠가 말했다.
“목소리는 흔들리는데, 마음은 참 단단하다.”

나는 대답했다.
“아빠 노래는 언제 들어도 집 같아요.
정겹고, 따뜻하고, 늘 돌아오고 싶은…”

그 말에
아빠는 눈을 꼭 감았다.

“네 말이… 오늘 최고의 노랫말이다.”


[8. 우리 둘만의 리마스터 버전]

몇 년이 지나
나는 취업했고, 아빠는 은퇴했다.
바빠서 노래도, 대화도 줄어들 무렵
문득 앨범이 떠올랐다.

CD 플레이어에 앨범을 넣고
조용히 재생 버튼을 눌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의 내 목소리는 여전히 삐걱였지만
그 이상으로
당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리는 시간에 닿으면
추억이 된다.


[9.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늘도 나는
출근길 이어폰 속에서
아빠와 나의 앨범을 듣는다.

음정은 아직도 틀리고
박자도 흔들리지만

그 앨범 안엔
부녀가 함께한 시간, 감정, 그리고 사랑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상 어디에도 팔지 못할 앨범.
하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앨범.

그리고,
아빠가 남겨준 가장 따뜻한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