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가르친 건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1일차]
📍 "노래, 진짜로 가르쳐 줄까?"
“너 진짜로 배워볼래?”
“어? 갑자기?”
“너 지난번 무대에서 표정은 10점 만점에 11점이었어. 그런데 음은… 좀 위험하더라.”
“…역시 못 들은 걸로 해줘.”
“아니. 진심이야. 30일만 아빠랑 해보자.”
그렇게 시작됐다.
‘아빠표 음치 탈출 30일 프로젝트’
프로젝트명은 엄마가 붙였다.
“제발 집에서 음 좀 맞춰라”는 당부와 함께.
[3일차]
🎵 "호흡부터 다시 배워야 해"
“노래는 숨으로 부르는 거야. 소리 전에 호흡.”
“숨은 늘 쉬고 있어요, 아빠.”
“그게 아니라… 다이어프램을 써야지!”
“그게 뭐야, 마법 주문이야?”
“하… 내 자식이 맞긴 한가…”
거실에 누워 복식호흡 연습을 하던 중
우리 집 강아지가 내 배 위에 올라앉았다.
강아지도 인정 못한 내 호흡 실력.
아빠는 한숨 쉬며 말했다.
“그래도 웃긴 건 너한텐 리듬감이 있단 거야. 음정이 문제야.”
“고마워요, 바닥에서 건져줘서.”
[7일차]
🎼 "그 노래, 다시 불러봐"
“‘그 겨울의 찻집’ 알아?”
“알죠. 아빠 18번이잖아요.”
“이번엔 네가 불러봐. 처음부터 끝까지.”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그대 떠난 이 거리를…”
“아니야, 아니야. 감정도 좋고 박자도 좋아.
근데 음정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떨어졌어.”
“아하, 진심 어린 칭찬 고맙습니다.”
“근데 웃기지? 너 노래 못 하는데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 좋아.”
“…욕인가요, 칭찬인가요?”
아빠는 그냥 웃었다.
그 웃음엔 참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애정, 안타까움, 그리고 기특함.
[10일차]
🎤 “이젠 진짜 부끄럽지가 않다”
엄마가 부엌에서 조용히 말했다.
“요즘 너네 둘 보기 좋아.”
“진짜?”
“응. 예전엔 네가 아빠 노래 듣기만 하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같이 웃고 같이 부르잖아.”
“노래는 아직 못 하지만… 그래도 무섭진 않아요.”
“그게 제일 큰 발전이지.”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아빠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게.
그건 비단 ‘음정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였던 걸,
늦게서야 깨닫고 있었다.
[15일차]
🎙️ “무대에 다시 서보자, 우리 둘이”
아빠가 말했다.
“말 나온 김에, 동네 축제 무대에 신청하자.”
“엥?! 아직 안 돼요!”
“왜? 노래 못한다고 해서 못 서는 거면, 아빠는 30년 전부터 무대 못 섰어.”
“…그게 자랑이에요?”
“당연하지. 난 그걸 자랑스럽게 견뎌냈거든.”
그 말에 왠지 울컥했다.
아빠의 모든 무대엔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노래를 좋아해서’ 서 있었던 것.
그걸 나는 이제야 진짜 이해하게 됐다.
[21일차]
🎶 “감정이 음정을 이긴다?”
“아빠, 내가 음정은 아직 안 맞는데 감정은 잘 싼다?”
“싼다니… 감정을 ‘짙게’라고 하자.”
“오케이. 그럼 감정은 10점?”
“그럼! 네가 처음 ‘보고 싶다’를 불렀을 때
아빠는 진짜 네가 누굴 그리워하는 줄 알았다니까.”
“그건… 이모부가 빌린 돈 안 갚아서 그래요.”
“그만해라. 그건 감정이 아니라 분노야.”
둘이 그렇게 웃으며 노래를 했다.
박자는 삐끗했지만
그 웃음은 정확히 동시에 터졌다.
[25일차]
📀 “음치는 바뀌지 않지만, 자신감은 생긴다”
아빠가 그랬다.
“사실 말이야. 음정이란 건 타고나는 부분이 커.
하지만 음악은 결국 즐기는 거야.
청중도, 너도.”
“…그래도 무대에서 망신당하면 어떡해요?”
“망신은 한 번만 당하고,
그다음부턴 추억이 된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한 곡을 완창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음정은 비틀거렸지만
엄마가 눈물 찔끔 흘렸고
아빠는 내 등을 탁 쳤다.
“우리 딸, 이제 무대 세울 준비 됐네.”
[30일차]
🎤 “음치도 무대를 밝히는 법”
축제 날, 작고 낡은 무대.
불빛은 흔들렸지만
사람들의 박수는 따뜻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아빠는 가수인데, 저는 음치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둘이 함께 부릅니다.”
아빠는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
음이 빗나가도,
박자가 앞서 나가도,
사람들은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한 아이가 물었다.
“언니, 진짜로 음치예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근데 괜찮아.
음치는 고쳐지지 않아도
노래는 할 수 있어.”
🎧 [에필로그: 31일째, 나의 음악 일기]
30일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나는 매일 노래를 부른다.
혼자일 때도,
아빠와 산책할 때도.
아빠는 아직도 노래를 가끔 부른다.
지하철에서, 설거지할 때,
그리고 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음치다.
하지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누군가의 노래를 더 깊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창작이야기(사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빠의 옛 무대, 재현하는 방송 출연기 (2) | 2025.06.24 |
---|---|
🎙️ 우리 둘의 첫 앨범, 소리로 남긴 사랑 (1) | 2025.06.24 |
🎤 아빠는 가수인데, 나는 왜 음치일까? (3) | 2025.06.24 |
🌙 살며시 덮어주는 이불자락, 그게 사랑 아닐까? (1) | 2025.06.24 |
🛠️ 남편의 물리치료실 따라갔다가 알게 된 진심 (1) | 202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