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 《7화 – 이젠 우리 안에, 새로운 색이 자라나고 있어》

히야121 2025. 7. 8. 22:43

 

 

“너와 내가 오랜 시간 서로의 색에 물들더니,
어느 날 문득, 우리 안에
처음 보는 색이 자라고 있었다.
그건 너도 나도 아닌,
'우리'라는 이름의 색이었다.”


1. “우린 이제 꽤 오래된 물감 같은 거야.”

“너랑 산 지, 벌써 1년 됐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실 시계 아래 놓인 달력이
365개의 함께한 날을 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

“응, 처음엔 너랑 살아도 괜찮을까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됐다는 뜻이야?”
“아니, 현실이 되어 다행이라는 뜻.”

우린 그렇게 웃었다.

처음엔
치약 짜는 방향도,
세탁기 돌리는 빈도도,
왜 저걸 저기 놓지? 같은 사소한 차이로
종종 감정이 스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놓은 방향 그대로
내가 따라 놓기 시작했고,

그의 취향이
내 삶 속 가구처럼
익숙해졌다.

“우린 이제 꽤 오래된 물감 같은 거야.
한 번 흔들면 다시 섞이는.”
그의 말에 나는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우린 그렇게 섞이면서 자라나고 있었다.


2. 초록빛이 가득한 아침을 맞이하는 법

그가 어느 날
화분을 사 왔다.

“이건 뭐야?”
“몬스테라. 공기 정화도 되고, 키우기도 쉽대.”
“너가 식물을 사다니… 무슨 일 있어?”

그는 멋쩍게 웃었다.

“우리 집도 좀… 자라면 좋을 것 같아서.”

식탁 옆 구석에 놓인 그 작은 초록이
며칠 지나자 잎이 더 퍼졌다.
그리고 그걸 물 주는 그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가 변하고 있다는 것.
우리 둘 다, 뭔가를 더 아끼고 있다는 것.

그 후론
베란다에도 작은 화분이 늘었다.
주말엔 마트 대신 꽃시장에 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사랑도… 식물처럼 자라는 중이구나.


3. “이건 우리만의 색이야, 누구도 흉내 못 내는”

우리는 요즘
예전보다 말을 덜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잘 통한다.

그가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면
나는 말 대신 과일을 깎는다.
그는 다 먹은 뒤
손으로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그리고 우린 눈빛으로 안다.
‘고마워’라는 말이 담긴 그 표정.

예전 같으면
길게 설명하고, 싸우고, 풀고를 반복했을 텐데
지금은
단 한숨, 하나의 눈빛, 조용한 찻잔 소리에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는 언어고,
너와 나 사이에서만 자란 색이었다.

어디에도 없는 색.
그래서 더 소중한.
그래서 더 단단한.


4. 우리의 식탁 위에는 ‘시간’이 차려진다

함께 살면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이 생긴다는 것.

예전엔 각자 먹던 인스턴트 식사,
지나치던 컵라면도
이젠 그의 반찬 취향과
내 국물 습관이 조화를 이루며
‘한 상’이 되었다.

“오늘 된장은 좀 짜네.”
“너가 김치 많이 먹을 거 같아서.”

그런 말들이
우리를 웃게 했다.

식탁 위에 오르는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서로를 위한 노력,
배려,
그리고 시간이 쌓인 조화였다.

밥 한 숟가락 사이에도
우리는 조금씩 더 서로를 배워갔다.


5. 누군가 말했지, 오래된 사랑은 닮는다고

거울을 보는데,
그의 말투가 내 입에서 나왔다.

“그건 좀 그르치~”
“어? 너 그 말투… 내 건데?”

“그래? 근데 나도 모르게 나오더라.”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문득 깨달았다.
그의 걸음 속도가
이젠 내 걸음과 같다.
그의 잠버릇이
내 수면 리듬이 되었다.

서로를 바꾸려 한 적은 없지만,
조용히 스며들며 닮아갔다.

그게 오래된 사랑의
고요한 기적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6. 이젠 우리 안에, 새로운 색이 자라고 있어

어느 날,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강아지 키워볼까?”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털 알레르기가 심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괜찮아? 감당할 수 있겠어?”
“응, 너랑 있으니까
뭔가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그 말에,
내 마음에 뭔가
다른 색이 번졌다.

그건 설렘도 아니고,
안정도 아닌,
새로운 감정의 톤.

아마 그건
‘미래’라는 이름의 색이었을 것이다.

함께 자라날 무언가를 품는 감정.
우리 둘 사이에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셋’의 온기.

반려견이든,
작은 식물이든,
아니면 언젠가 아이든.

이제 우리 안엔
새로운 색이 자라고 있었다.


7. 에필로그 – 우리만의 팔레트엔, 내일이 있어

“넌 지금 무슨 색 같아?”

어느 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살짝 생각하다가 말했다.

“약간 연보라?
조금 지치긴 했는데,
그래도 포근하고 편안한 그런 색.”

“그럼 나는…”
“응?”
“나는 네 옆에 있어서
살구빛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우리는 웃으며
손을 잡았다.

매일 같은 공간,
같은 루틴,
같은 사람.

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매일 다른 감정.

그 감정들이 모여
우리만의 팔레트를 만들었다.

이 팔레트엔
과거도, 현재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일의 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