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 커피와 사랑 이야기 – “너는 라떼, 나는 아메리카노였지”

히야121 2025. 6. 29. 01:38

 

“너는 무슨 커피 제일 좋아해?”

“라떼. 무조건 라떼.”

“나는 아메리카노.”

“역시… 우리, 너무 달랐어.”

그게 우리가 처음 나눴던 대화였다.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서로의 취향을 탐색하듯 물었던 그 순간.
달달한 라떼를 마시는 너와,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한 잔에 이미 우리의 끝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 커피는 우리의 데이트였다

“오늘 카페 갈까?”
“그럴까, 근데 이번엔 너가 좋아하는 데로 가자.”

우리는 유난히도 카페에 많이 갔던 연인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창가 자리에 앉아, 김 서린 유리창을 보며 말없이 커피를 마셨고
햇살 좋은 날엔 야외 테라스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웃곤 했다.

그 시절 우리는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설렜다.
새로 생긴 로스터리를 찾아가는 일, 직접 핸드드립을 내려보는 체험 데이트,
같이 원두를 고르고, 커피를 블렌딩하는 일까지.

“이 원두 향 너무 좋다, 뭔가 너 같아.”

“나는… 향이 아니라 뒷맛이 더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그럼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다. 향은 꽃이고 뒷맛은 깊지.”

너는 그런 말들을 곧잘 했다.
그땐 몰랐다. 그 향기 나는 말들이
나중에 얼마나 오래 기억될 줄은.


2️⃣ 사랑은 뜨거운 라떼처럼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가 사랑을 시작했을 때,
그 감정은 갓 내린 라떼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 속에 숨어 있는 에스프레소의 진한 농도.
나는 그걸 너에게서 느꼈다.
겉으로는 수줍고 순해 보이지만, 마음속엔 누구보다 깊은 감정이 있는 사람.

“나, 너한테 진심이야.”

너의 그 고백이
마치 처음 마셔본 바닐라 라떼처럼 달고 진하게 느껴졌던 날.
그날 이후로, 나는 평생 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오를 것 같았어.


3️⃣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 나

반면 나는 늘 아메리카노였다.
직설적이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고, 무심한 척 잘도 했던 사람.

“오빠는 왜 맨날 아메리카노야? 좀 달콤한 거 마셔보면 안 돼?”

“쓴 게 익숙해서.”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단 걸 마시면 오히려 심장이 뛰었고,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다.
너의 다정함 앞에서 어쩔 줄 몰랐고, 사랑받는 일이 두려웠다.

결국, 우리는 따뜻한 라떼와 차가운 아메리카노처럼,
온도가 다른 사람이었다.


4️⃣ 커피잔 사이의 거리

우리는 종종 싸웠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커피가 식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다퉜다.

“오빠는 맨날 말 안 해.”

“너는 너무 감정적으로 구니까 그래.”

“아니야, 나는 그냥… 오빠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거야.”

우리는 마주 앉아 있지만,
그 사이 놓인 커피잔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사랑은 뜨거운 커피 같다고들 말한다.
금세 식어버리니까,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조심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데우기보다, 먼저 식혀버린 커피가 되어갔다.


5️⃣ 어느 날, 커피 향만 남기고 너는 사라졌다

“우리, 그만하자.”

그 말은 네가 먼저 꺼냈다.
그날따라 나는 커피도 주문하지 못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 앉아 있었지.

“나는 이제 더 이상 라떼를 마시고 싶지 않아.”

“왜?”

“너랑 마시는 라떼는, 이제 식은 우유 같아.”

그 말이 너무 슬펐어.
사랑이 끝날 때, 커피는 더 이상 커피가 아니었다.
우리가 쌓아올린 향기와 온기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건 차가운 잔 하나뿐이었지.


6️⃣ 헤어진 뒤에도 나는 커피를 마셨다

너와 헤어지고 난 뒤에도
나는 습관처럼 커피를 마셨다.
혼자 가던 카페, 둘이 가던 카페, 새로 생긴 카페.

“오늘은 카라멜 마끼아또 주세요.”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라떼도 아니고, 아메리카노도 아닌
새로운 커피를 주문하고 있더라.

그건 아마도, 네가 아닌 나로 살아가려는 첫걸음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커피를 달리 보기 시작했어.
모든 커피에는 사연이 있고,
누군가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7️⃣ 다시, 커피를 마시는 이유

누군가 말했지.
“커피는 사람이 마시지만, 사랑은 사람이 마신다.”

나는 이제 커피를, 사랑처럼 대한다.
조심스럽게 온도를 느끼고, 향기를 음미하며
급하게 삼키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문득, 너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어디선가 따뜻한 라떼 한 잔 마시며,
나와의 사랑이 너무 쓰지 않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