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레이션, 지금도 그대로네.
근데… 내가 이제는, 그때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어.”
– 진영, 전역 10년째 되는 날, 봉투를 뜯으며
1. 전역 10주년, 아무도 모르게 준비한 시간
2025년 6월, 진영 씨의 전역 10주년.
그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서랍 안에 숨겨둔 군용 박스 하나를 꺼냈다.
“그게 뭐야?”
“음… 나만의 타임캡슐.
전역할 때 나 자신한테 편지를 썼거든.
그리고… 전투식량 하나도 같이 넣어놨지.”
나는 놀랐다.
전투식량은 언제나 ‘현재’를 위한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미래의 자신에게 주려고 남겨놨다니.
진영 씨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그 속엔 황토색 봉지 하나,
그리고 한 장의 편지.
2. 10년 전 그날, 진영이 보낸 편지
“읽어볼래?”
“아니, 자기 목소리로 읽어줘.”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지막이 읽기 시작했다.
📩 2025년의 진영에게
안녕. 지금쯤이면 넌 민간인으로 잘 살고 있겠지?
아마도 결혼했거나, 연애 중이거나,
아니면 여전히 너답게 혼자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오늘은 전역일이야.
나 김진영, 드디어 이 땅의 군 복무를 마친다.요즘은… 많이 외롭고, 미래가 불안해.
민간 사회가 무서울 때도 있고,
밤마다 이 텐트 안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혼잣말도 많이 해.근데 한 가지는 확실해.
언젠가 너는 ‘이 시절’을 추억할 거라는 것.그래서 이 전투식량 하나,
너에게 남겨놓는다.나중에 뜯어보면서,
너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삶을 살고 있기를.– 2015년 6월, 병장 김진영 드림
3. 편지를 읽고 난 진영의 표정
그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물었다.
“그때 진영이는… 지금의 진영이를 자랑스러워할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비록 내 삶이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
아이가 있고,
그 시절 동기들이 여전히 연락되고,
그리고… 내 손으로 다시 이 레이션을 뜯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
4. 다시 뜯은 전투식량
진영 씨는 레이션을 조심스럽게 뜯었다.
봉지 안에는 소불고기 덮밥,
건조 김치,
그리고 비상용 캔디 하나.
“이거 아직 먹어도 될까?”
“유통기한… 지난 것 같긴 한데?”
“괜찮아. 오늘은 맛이 아니라 의미로 먹는 거야.”
그는 작은 숟가락을 꺼내
한입 떠넣었다.
“음...
여전히 질기고, 짜고,
밥알은 퍼져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는 그에게 포크를 건넸다.
“그때의 너는, 지금 이 순간을 상상이나 했을까?”
“전혀.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만 했던 날들.”
5. 아빠가 딸에게 건넨 편지
그날 밤, 진영 씨는 책상 앞에 앉아
소율이에게 편지를 썼다.
📩 To. 소율에게
아빠는 오늘,
10년 전 군대에서 쓴 편지를 다시 읽었단다.
그때 아빠는 외로웠고, 불안했고,
그리고 지금의 너와 너희 엄마를 상상도 못 했어.그런데 지금은 말야,
하루하루가 너무 고맙고 따뜻해.아빠는 이제,
전투식량보다 네가 만든 ‘토끼김밥’이 더 좋아.사랑은 그렇게 바뀌는 거래.
–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6. 타임캡슐에 다시 담은 오늘
편지를 마친 진영 씨는
빈 전투식량 봉지 안에
소율이 유치원 졸업 사진 한 장과
방금 쓴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 다시 박스를 닫으며 말했다.
“이건, 2035년의 나에게 주는 거야.
10년 뒤에도 내가
지금처럼 이 가족을 지켜가고 있길 바라며.”
나는 물었다.
“다시 넣을 전투식량은 없어?”
“이제는 없어도 돼.
오늘의 나는,
이제 과거의 나를 지켜줄 수 있으니까.”
7. 과거의 나에게 쓰는 대답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예전 버전’이다.
지금의 나도,
5년 전엔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던 존재였다.
진영 씨는
군 생활 속 텐트에서 자신에게 묻던 질문들에
지금 답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지?”
→ “나는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빠이며,
지금 이 가족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 “완벽하지 않지만,
하루하루 정성껏 살고 있다.”
“외로움은 언제 끝날까?”
→ “사랑이 시작되면,
외로움은 서서히 물러난다.”
🫧 전투식량이었던 인생은, 이제는 도시락이 되었다
10년 전, 진영 씨는
한 끼를 버티기 위해 전투식량을 뜯었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도시락을 만든다.
그 차이는
생존과 사랑의 차이다.
“나는 이제,
레이션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한 삶을 살고 있어.”
그 말을 남긴 진영 씨는
다시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 거기엔
질긴 밥알 대신
사랑으로 눌러 쓴 글씨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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