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침대 위에 둥글게 굴러다니며 치토스를 씹던 방돼곰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욕실 문이 열리며 뿜어져 나오는 눅눅한 수증기,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무시무시한 물소리.
그렇습니다.
오늘은 일주일 중 방돼곰이 가장 두려워하는 날, 바로 ‘금홍이가 머리 감는 날’입니다.
소심한 방돼곰은 벌써부터 온몸이 간지러워지는 착각에 시달리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씁니다.
하지만 잠시 후, 거대한 수건을 양 돌풍처럼 머리에 두른 금홍이가 위풍당당하게 방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금홍: (수건을 탁 탈며 젖은 머리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아후, 시원하다! 야, 방돼곰! 너 또 이불 뒤집어쓰고 과자 먹지? 내가 머리 감는 동안 방 좀 환기하라고 했잖아!
방돼곰: (이불 속에서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금... 금홍아. 제발 거기서 멈춰. 더 이상 내 침대 쪽으로 다가오지 마. 부탁이야...
금홍: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털며 침대 모서리에 털썩 앉는다) 머리 감고 나온 사람한테 왜 이래?
나한테 무슨 냄새 나냐?
향기만 좋구먼!
방돼곰: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걷어찬다)
으악! 안 돼!
방금 네가 머리 털 때 뭐가 날아왔는지 알아?
네 그... 시베리아 칼바람보다 무서운 ‘긴 곱슬머리카락’ 폭탄이 날아왔다고!
금홍: (자기 머리를 만지며 뻔뻔하게)
에이, 호들갑은.
내 머리가 좀 길고 탄력 있는 곱슬이긴 해도, 무슨 폭탄씩이나 되냐?
너 전생에 대머리 독수리였어? 머리카락에 왜 이렇게 예민해?
방돼곰: (양손으로 자기 몸을 다급하게 훑으며)
예민한 게 아니야! 이건 생존의 문제라고!
금홍이 네 머리카락은 그냥 머리카락이 아니야.
한 번 내 털에 꼬이기 시작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악마의 그물’이란 말이야! 봐봐, 벌써 내 왼쪽 앞발에 한 가닥 감겼잖아!
금홍: (방돼곰의 앞발을 들여다보며 킥킥댄다)
어, 진짜네? 어쩜 이렇게 네 보송보송한 털 사이로 싹 파고들었냐?
내 머리카락이 네 털을 참 좋아하나 봐. 찰떡궁합이네!
방돼곰: (울상이 되어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찰떡궁합은 무슨... 네 머리카락은 자생력이 있어.
혼자서 내 몸을 타고 기어 올라온단 말이야.
지금 여름이라 땀나서 몸도 끈적거리는데, 여기에 네 긴 곱슬머리가 감기면... 으으, 온몸이 간지럽고 따갑고 난리도 아니야.
겨울 벌크업 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살이 쏙 빠지겠어!
금홍: (드라이기를 가져와 코드를 꽂으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내가 드라이기로 바짝 말릴 테니까 넌 저기 구석에 가 있어. 바람에 날아가게.
방돼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급하게 금홍이의 손을 막는다)
잠깐, 스톱! 드라이기? 미쳤어?
너 그 강력한 드라이기 바람으로 머리를 말리면, 그 수많은 곱슬머리 파편들이 온 방안에 흩날릴 거 아냐! 그럼 난 방구석에 고립된 채 머리카락 미세먼지를 정면으로 맞아야 한다고!
금홍: (드라이기를 켜며 윙윙 소리 때문에 크게 말한다)
뭐라고? 안 들려!
원래 머리는 바람으로 말려야 제맛이지! 자, 방돼곰! 머리카락 태풍 간다!
(위이이이잉—! 드라이기의 강력한 바람이 시작되자, 금홍이의 긴 곱슬머리가 마치 살아있는 메두사처럼 사방으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탄력 넘치는 주황빛, 혹은 갈색의 머리카락들이 바람을 타고 방돼곰을 향해 정밀 유도 미사일처럼 날아갑니다.)
방돼곰: (치토스 봉지로 얼굴을 가리며 처절하게 외친다)
으아악! 금홍아! 살려줘! 내 소중한 치토스 위로 네 머리카락이 내려앉고 있어!
이건 단짠이 아니라 ‘단짠-헤어’잖아! 맛이 오묘해진다고!
금홍: (머리를 요리조리 흔들며 신나게 말린다)
하하하! 야, 방돼곰! 네 이마에 하나 붙었다!
어, 등 뒤에도 두 가닥 안착!
완전히 머리카락 자석이네, 자석이야! 너 털이 많아서 그래!
방돼곰: (몸을 털며 방바닥을 구른다)
으아아, 간지러워! 등이 너무 간지러워! 금홍아, 이거 좀 떼어줘!
손이 안 닿아!
곰은 신체 구조상 등 한가운데에 손이 안 닿는단 말이야!
금홍: (드라이기를 끄고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돈한다)
휴, 다 말렸다.
어디 보자, 우리 방돼곰 수난의 현장을 볼까?
(방돼곰의 등을 확인하고 폭소를 터뜨린다)
아하하하! 대박! 너 진짜 웃기다.
네 하얗고 보송한 털 사이에 내 곱슬머리가 용수철처럼 아주 촘촘하게 박혔어.
무슨 고슴도치 같다!
방돼곰: (바닥에 엎드린 채 훌쩍이며)
웃음이 나와?
난 지금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서서 미칠 것 같은데...
흑흑, 금홍이 넌 너무 잔인해.
겨울 한파보다 네 머리카락이 훨씬 더 잔인해...
금홍: (미안했는지 롤 테이프(돌돌이)를 들고 와 침대 옆에 앉는다)
알았어, 알았어.
금홍이가 해결해 줄게.
자, 엎드려 봐.
이 ‘돌돌이’로 네 몸에 붙은 내 흔적들을 싹 박멸해 줄 테니까.
방돼곰: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진짜지? 아프게 털 뽑으면 안 돼...
나 소심해서 아픈 거 제일 싫어해.
금홍: (방돼곰의 등에 롤 테이프를 대고 굴린다)
찌이익, 찌이익. 걱정 마, 이 전문가의 손길을 믿으라고.
와, 근데 진짜 많이 붙긴 했다.
내 머리카락 반, 네 털 반이네.
이 정도면 우리 DNA 섞이는 거 아냐?
방돼곰: (테이프가 지나갈 때마다 몸을 움찔거리며)
흐익... 찌릿해. 기분이 이상해.
근데 진짜 다 떨어지고 있어?
금홍: (테이프를 보여주며)
보여?
내 탐스러운 곱슬머리가 이 테이프에 가득하지?
야, 근데 네 털도 엄청 빠진다.
너도 나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구먼, 뭘.
방돼곰: (민망한 듯 흠흠거리며)
그... 그건 내 천연 패딩의 일부가 자연적으로 탈락한 것뿐이야.
세포 호흡 같은 거지! 아무튼 일주일에 한 번씩 왜 이렇게 날 고문하는 거야? 머리 감는 주기를 한 한 달로 늘리면 안 돼?
금홍: (방돼곰의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더러워 죽겠네!
이 더운 여름에 머리를 한 달 동안 안 감으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냄새 때문에 네가 먼저 기절할걸?
내가 다 너 좋으라고 향기 마케팅 해주는 거야.
방돼곰: (겨우 몸이 깨끗해지자 다시 이불을 끌어안으며 사태를 진정시킨다)
향기는 좋은데... 그 물리적인 침공이 너무 무서워.
다음부터 머리 감을 때는 화장실에서 완벽하게 말리고 나오기 약속해.
제발.
금홍: (새 치토스 봉지를 뜯으며)
알았어, 노력해 볼게. 자, 고생했으니까 내가 치토스 하나 먹여줄게.
아~ 해봐.
방돼곰: (입을 크게 벌리며) 아~~ 와작!
금홍: (방돼곰의 입가를 보며 또 자지러지게 웃는다)
푸하하핫!
방돼곰: (우물거리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왜? 왜 또 웃어? 설마...
금홍: (방돼곰의 턱 밑을 가리키며)
어떡해, 방금 먹은 치토스 조각이랑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이 네 턱밑 털에 같이 엉켜버렸어.
완전 단짠단짠 콜라보레이션이다!
방돼곰: ( 거울을 보러 다급하게 뛰어가며 절규한다)
으아아악! 금홍아!!! 오늘 진짜 나한테 왜 이래!!!
[금홍이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방돼곰의 눈물겨운 비명이 섞여 드는, 바삭하고도 털 날리는 방구석의 어느 특별한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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