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제법 거셌다. 평소라면 "곰아! 점심 뭐 먹을까?" 하며 작업실 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혔을 금홍이었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소식이 없었다. 방돼곰은 굳게 닫힌 금홍이의 방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기타를 품에 안았다.
툭, 퉁. 둔탁한 코드가 작업실의 공기를 채웠다. 그때, 웅크린 실루엣의 금홍이가 거실로 털썩 걸어 나와 소파에 몸을 묻었다. 평소의 생기는 어디로 갔는지, 얼굴에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곰아."
금홍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방돼곰을 불렀다.
"어, 금홍아. 깼어? 배는 안 고파?"
방돼곰이 기타 줄을 잡던 손을 멈추고 다정하게 물었다.
"응, 별로……. 그냥, 비가 오니까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머리도 무겁고, 가슴 속에도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답답해."
금홍이는 무릎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늘 주위 사람들을 웃기 바빴던 금홍이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는 건, 방돼곰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또 시작이네, 비만 오면 찾아오는 그 몹쓸 녀석."
방돼곰이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금홍이의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곰아. 나 진짜 이상하지? 날씨 좀 흐리다고 이렇게 바닥까지 가라앉고…….
남들 앞에서는 맨날 밝은 척하면서, 사실은 비 오는 날이 너무 무서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붕어빵도 겨울에만 맛있고, 수박도 여름에만 단 법인데. 사람 마음도 날씨에 따라 요동칠 수 있는 거지. 네가 날씨 타는 게 무슨 죄라고 미안해해?"
방돼곰이 소파 곁으로 다가가 금홍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하지만…… 늘 에너 넘쳐야 하잖아. 다들 나한테 그걸 기대하는데, 정작 비만 오면 아무것도 못 하겠는걸."
"그건 네 착각이야, 금홍아. 넌 365일 내내 태양처럼 떠 있을 필요 없어. 태양도 밤에는 쉬고, 가끔은 구름 뒤로 숨잖아. 안 그래?"
금홍이가 슬쩍 고개를 들어 방돼곰을 바라봤다. 촉촉해진 눈망울이 눈에 밟혔다.
"그래도…… 멍하니 있으면 자꾸 우울한 생각만 비처럼 쏟아지는걸. 멈추는 방법도 모르겠고."
방돼곰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방구석에 세워두었던 통기타를 다시 고쳐 잡았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널 위해서 선물을 하나 준비했지."
"선물? 이 와중에 무슨 선물이야……."
"짜잔. 이름하여 '금홍이 전용 우산 음악'. 너 비만 오면 귀 막고 귀찮아하잖아. 그럴 때 들으라고 내가 며칠 동안 밤새워서 곡 하나 썼다."
금홍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날 위해서 곡을 만들었다고? 네가?"
"어허, 이래 뵈도 나 방돼곰이야. 작곡가 방돼곰의 멜로디를 무시하지 마라. 자, 잘 들어봐. 아직 가사는 가이드만 붙인 거니까 마음으로 느껴봐."
방돼곰은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이내 부드러운 아르페지오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통기타의 따뜻한 울림이 창밖의 거친 빗소리를 부드럽게 덮어 나갔다.
🎶 코드는 C - G - Am - F... 나지막한 방돼곰의 목소리가 얹어진다.
"회색빛 커튼이 내려앉은 날 / 네 작은 어깨가 조금 시려 보일 때 / 난 알아, 네가 숨겨둔 그 비밀을 /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아, 내 친구야"
금홍이는 멍하니 방돼곰의 손가락과 그의 입술을 번갈아 보았다.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빗물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면 내 품에 기대 / 네 눈물까지 모두 빗소리에 묻어줄게 /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출 때 / 가장 먼저 웃을 널 아니까 / 오늘은 그저 쉬어가도 돼"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기타 줄의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거실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금홍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매로 눈가를 훔쳐냈다.
"어라? 금홍아, 울어? 야, 내가 울리려고 만든 노래가 아닌데! 힐링 곡이라고, 힐링 곡!"
방돼곰이 당황해서 기타를 내려놓으려 하자, 금홍이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방울을 매단 채 짓는, 오늘 첫 미소였다.
"치…… 누가 운대? 노래가 너무 좋아서 감동해서 그래."
"진짜 좋았어? 다행이다. 너 우울할 때마다 이 노래 무한 반복 재생해 줄 테니까, 귀 따가워도 참아라."
"웅, 진짜 좋아. 가사가 꼭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곰아, 고마워. 나 진짜 비 오는 날이 너무 싫었는데, 이 노래가 있으면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금홍이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돼곰의 듬직한 등을 톡톡 두드렸다.
"당연하지. 네가 비 맞는 동안 내가 젖지 않는 우산이 되어줄 순 없어도, 같이 젖어줄 수는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음부터 비 올 땐 숨지 말고 나한테 와. 알았지?"
"응! 대신 비 오는 날엔 네가 맛있는 거 사줘야 해. 김치전에 막걸리 어때?"
금홍이의 목소리에 드디어 특유의 장난기가 돌아왔다. 방돼곰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봐, 금방 살아날 거면서. 좋아, 김치전은 이 방돼곰 형님이 쏜다! 가자, 주방으로!"
창밖의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두 곰이 있는 거실만큼은 그 어떤 날보다 따뜻하고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듯했다. 금홍이의 비밀은 이제 더 이상 외로운 슬픔이 아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정한 멜로디가 되었다.
OST 👉
Rainnyday20260701 光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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