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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해 질 무렵, 주황빛 노을이 길게 드리운 방돼곰의 방]

히야121 2026. 6. 28. 13:50

 

디지털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이리저리 만지던 금홍이가 한숨을 푹 쉽니다.

그 옆에서 방돼곰은 웬일로 좋아하는 치토스 봉지도 뜯지 않은 채, 침대 한구석에 웅크려 먼 산만라보고 있습니다.

소심한 방돼곰의 넓은 등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쓸쓸한 기운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죠.

 

금홍: (건반을 띵- 누르며 방돼곰을 돌아본다)

야, 방돼곰. 너 오늘 왜 그래?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치토스를 앞에 두고 뜯지도 않고, 무슨 사춘기 소년처럼 감상에 젖어 있어?

 

방돼곰: (깊은 한숨을 푸하- 내쉬며 이불을 더 끌어당긴다)

금홍아...

묻지 마.

내 마음에 잔인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아직 6월인데 내 마음은 한겨울 한파야.

 

금홍: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또 시작이네, 또. 이번엔 뭐가 무서운데?

겨울 추위?

아니면 내 머리카락 폭탄?

 

방돼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내 연약하고 소심한 영혼에 깊은 상처가 생겼어.

나... 꿈이 생겼거든.

근데 시작하기도 전에 짓밟혔어.

 

금홍: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의자를 끌고 다가앉으며)

꿈?

네가?

치토스 공장장 말고 다른 꿈이 생겼다고?

뭔데, 말해봐.

이 금홍이님이 들어줄게.

 

방돼곰: (우물쭈물하다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고막남친.

금홍: (귀를 의심하며)

어? 뭐라고?

똑바로 말해봐, 안 들려.

 

방돼곰: (얼굴이 주황색 치토스처럼 빨개지며)

고막남친 말이야!

밤마다 라디오나 SNS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잘 자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 그런 고막남친!

나도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영혼의 위로’를 건네는 그런 멋진 곰이 되고 싶었다고!

 

금홍: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부들부들 떤다)

프흡... 크흠! 고... 고막남친?

우리 방돼곰이?

야, 네 목소리는 감미로운 발라드라기보다는... 저기 지리산 동굴에서 겨울잠 자다 깨서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가깝지 않냐?

 

방돼곰: (상처받은 눈빛으로)

거봐! 너도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며) 나도 내가 엄청난 음치인 거 알아!

한 음으로 시작해서 한 음으로 끝나는 기적의 가창력이라는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금홍: (미안해져서 이불을 똑똑 두드린다) 아냐, 아냐.

내가 말이 좀 심했다.

야, 소심이 곰팅아, 나와봐.

음치가 어때서? 요즘은 다 보정도 잘해 가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가 더 먹히는 시대야.

근데 왜 용기를 못 냈는데?

 

방돼곰: (이불을 슬그머니 내리며 훌쩍인다)

실은... 얼마 전에 혼자 코인 노래방에 몰래 갔었어.

금홍이 너한테 피아노 반주 해달라고 하면 비웃을 게 뻔하니까, 큰맘 먹고 용기 내서 들어갔지.

가장 잔잔하고 애절한 발라드를 골랐어.

 

금홍: 무슨 노래 불렀는데?

 

방돼곰: 그... 우리가 같이 만들었던 치토스 노래 있잖아.

그걸 혼자 발라드 풍으로 애절하게 불러봤지.

♪ 외로운 이 밤~ 입안에서 울리는~ 영혼의 위로~ ♪ 하면서 감정을 엄청 잡았어. 눈물까지 살짝 고였다니까?

 

금홍: 오, 제법인데?

감성은 완벽했네.

근데 왜?

 

 

방돼곰: (고개를 푹 숙이며)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까... 옆방에서 노래 부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라고.

난 내 감수성에 모두가 압도당한 줄 알았지.

근데... 노래가 끝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옆방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금홍: 뭐라고 그러는데?

 

방돼곰: “방금 옆방에서 무슨 멧돼지 신음 소리 나지 않았냐?”,

“기계 고장 난 줄 알았다”라고... (눈물을 훔치며) 심지어 노래방 사장님이 나 나올 때 음료수 하나 쥐여주면서 “학생, 어디 많이 아파? 힘내...” 하고 처량하게 쳐다보시더라.

그 순간 내 안의 소심한 자아가 완전히 박살 났어.

고막남친은커녕 ‘고막 테러리스트’가 된 기분이었다고!

 

 

금홍: (결국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린다) 아하하하!

멧돼지 신음 소리래!

사장님은 또 왜 그렇게 친절하신 거야!

아하하, 배야!

 

 

방돼곰: (원망스럽게) 금홍아! 친구가 꿈을 잃고 좌절했는데 웃음이 나와?!

난 진짜 진지했단 말이야!

나도 남들처럼 감미롭게 “바삭한 위로를 건넵니다” 하고 멋지게 고백도 해보고 싶었고, 목소리로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두 번 다시 마이크를 잡을 용기가 안 나... 난 평생 방구석에서 조용히 치토스나 씹어야 할 팔자인가 봐.

 

금홍: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방돼곰의 둥근 어깨를 툭툭 친다)

야, 방돼곰. 삐지지 마. 미안해, 너무 웃겨서 그랬어.

근데 솔직히 말해줄까?

난 네 그 웅장하고 조금은 어설픈 목소리가 진짜 매력 있다고 생각해.

 

 

방돼곰: (의심 가득한 눈으로) 진짜? 위로하려고 거짓말하는 거지?

 

금홍: 거짓말 아냐. 잘 들어봐.

진짜 고막남친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다들 똑같이 부드럽고, 똑같이 감미롭지. 하지만 ‘치토스를 바삭하게 씹으며 온몸으로 단짠의 인생을 노래하는 음치 곰’은 전 세계에 너 하나뿐이잖아.

 

방돼곰: (귀가 쫑긋해지며) 음치 곰의... 단짠 인생?

 

금홍: 그래! 너 아까 치토스 노래 불렀다며. 그 가사가 얼마나 좋아? 진정성이 있잖아.

비록 음은 다 틀리고 박자는 네 마음대로 쪼갰을지 몰라도, 하루를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에겐 네 그 투박한 목소리가 진짜 울림을 줄 수 있어.

 

방돼곰: (슬그머니 치토스 봉지를 뜯으며)

바스락- 하지만... 난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가 없는걸.

누가 내 목소리를 듣고 웃으면 심장이 콩알만 해져서 이불 속으로 도망치고 싶단 말이야.

 

금홍: (디지털 피아노 건반 위로 다시 손을 올리며 활짝 웃는다)

누가 사람들 앞에 서래?

네 곁엔 최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이 금홍이가 있잖아.

용기가 안 나면, 일단 내 앞에서만 고막남친 해봐.

내가 네 음정, 박자 다 무시하고 네 목소리에 딱 맞춰서 천재적인 반주를 깔아줄 테니까.

 

 

방돼곰: (치토스를 입에 물고 감동에 젖어)

금홍아... 넌 정말 내 영혼의 단짝이야.

그럼... 나 다시 한번 불러봐도 돼?

비웃지 않을 자신 있어?

 

 

금홍: 당근이지!

자, 고막남친 방돼곰의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반주 큐!

 

(금홍이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부드럽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번엔 신나는 재즈가 아니라, 아주 잔잔하고 따뜻한 어쿠스틱 발라드 선율입니다.

방돼곰은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 손에 쥔 치토스를 마이크 삼아 입가 대고 심호흡을 합니다.)

 

 

방돼곰: (조금 떨리는, 그러나 온 힘을 다해 묵직한 저음으로 부른다)

♪ 세상에 치여... 눅눅해진 마음에... 너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네... ♪

 

금홍: (방돼곰이 음정을 완전히 이탈해 제멋대로 부르는데도, 귀신같이 그 음에 맞춰 코드를 변환하며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준다)

그렇지, 감정 좋아. 계속 가!

 

 

방돼곰: (금홍이의 완벽한 서포트에 용기를 얻어 가슴을 활짝 펴고 후렴구를 외친다)

♪ 외로운 이 밤! 입안에서 울리는! 영혼의 위로!

♪ (치토스를 한 조각 와작 씹으며 효과음을 넣는다)

와작!

눈물 섞인 맘을 녹여주는! 바삭한 위로!

 

 

금홍: (노래에 맞춰 코러스를 넣어준다) ♪ 단짠의 위로~~ ♪

 

방돼곰: ♪ 치토스 한 조각에 가만히 기대어... 운다... ♪

 

(마지막 음이 방안에 잔잔하게 퍼지고, 금홍이가 피아노 건반에서 손을 떼며 조용히 박수를 칩니다.)

 

금홍: (따뜻하게 웃으며) 와, 방돼곰. 방금 고음에서 완전 음을 창조해 냈지만... 그래도 진짜 멋졌다.

내 고막은 확실히 위로받았어.

이 정도면 합격이야.

 

 

방돼곰: (부끄러운 듯 볼록한 배를 긁적이며 활짝 웃는다) 헤헤... 진짜? 나 조금은 고막남친 같았어?

용기 내길 잘했다. 옆방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내 유일한 관객인 금홍이 네가 좋다고 하면 난 그걸로 충분해.

 

금홍: (치토스 박스에서 과자를 하나 꺼내며)

당연하지. 자, 고막남친님. 목 쓰셨으니까 치토스로 목 좀 축이세요(?).

 

 

방돼곰: (치토스를 받아먹으며)

와작- 역시 노래 부르고 먹는 치토스가 최고야!

금홍아, 우리 다음엔 이 곡 녹음해서 SNS에 올려볼까?

'소심한 곰의 단짠 발라드'로!

 

 

금홍: (눈을 흘기며) 악플 달려도 이불 속에 숨지 않기 약속하면 고려해 볼게!

자, 한 번 더 연습해 보자!

 

 

 

[비록 음정은 안 맞고 박자는 제멋대로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구의 피아노 반주 덕분에 소심한 방돼곰은 오늘 밤, 누군가의 마음을 바삭하게 녹여줄 진짜 '고막남친'이 될 용기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