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짭조름한 그날의 기억, 제주에서 피어난 감정
“그 사람, 처음 만났을 때 마늘짠지 냄새가 났어요.”
이건 진짜 이야기다.
제주에서, 마늘밭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짭조름하고도 따뜻한 연애의 기록.
🌱 평대리 마늘밭에서 만난 사람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전, 뭔가 특별한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그때,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쪽 감성 좋아한다면, 구좌 쪽 마농지 한 번 가봐요.
마늘 농장 카페인데, 음식도 좋고 조용해서 혼자 생각 정리하기 딱이야.”
솔직히 처음엔 별 기대 없었다.
마늘 농장? 카페? 그리고 짠지?
모든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날,
그곳에서 짠지보다 더 짭조름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 짠지 한 접시, 그리고 낯선 인연
마농지 카페는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천장엔 마늘이 매달려 있고,
창밖으로는 넓게 펼쳐진 마늘밭이 보였다.
“혼자세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리니,
모자에 얼굴 절반을 숨긴 남자가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긴 여행에 지친 듯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선명했다.
“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조용히 앉아 있으려고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심히 마농지 특선 메뉴를 추천했다.
“짠지 플레이트 드셔보셨어요?
생긴 건 평범한데, 맛은 꽤 인상적이에요.”
나는 그 말을 믿고 시켰다.
짠지와 흑마늘 라떼, 고소한 감자전,
그리고 그 사람과의 조용한 눈빛.
그 순간,
마늘 냄새가 나는 낯선 테이블이
따뜻한 첫 만남의 자리로 바뀌었다.
🧄 짠지의 맛은, 사랑의 시작과 닮았다
짠지는 독특했다.
단짠단짠.
씹으면 바삭하면서도 안쪽은 촉촉했다.
“그거, 매일 아침 농장 어르신들이 직접 담그신대요.”
그가 말했다.
“아, 근데 전 마농지 직원은 아니에요. 그냥... 좀 자주 와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직원 같았어요. 말투가 자연스러워서.”
그날 우리는 짠지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서의 바쁜 일상,
그는 퇴사 후 제주로 내려와 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1년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
서로 다른 배경, 다른 고민.
하지만 그날 마늘밭 테라스에서
우리는 같은 짠지, 같은 햇살을 나눴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다.
💌 짭조름한 연락의 시작
서울로 돌아와 며칠 뒤,
나는 그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 먹던 짠지가 자꾸 생각나요.
혼자 먹기엔 입이 심심한데...
같이 먹을 사람, 생각나더라고요.”
그 짧은 문장이
심장을 두 번 뛰게 했다.
그 후 우리는
매주 목요일마다 짠지를 매개로 연락을 이어갔다.
그가 마농지에서 공수해온 마늘장아찌 사진,
내가 그걸 응용해 만든 짠지비빔밥 레시피,
그리고 서로의 하루에 짠지처럼 스며든 말들.
짠지처럼,
우리는 짭조름하게, 조용히 서로를 익혀갔다.
🍽️ 다시 마농지, 그 사람과 함께
한 달 뒤, 나는 다시 제주에 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있었다.
“우리, 오늘도 짠지부터 먹을까?”
그 말이 우스워서 웃다가,
그의 손을 마늘밭 옆 테이블에서 살짝 잡았다.
그날은 유독 바람이 세찼다.
그럼에도 그는
내 얼굴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짠지는 오래 두면 더 맛있어진대요.
우리도 그런 사람 되면 좋겠네요.”
그 말이
그 어떤 프로포즈보다 달콤했다.
🎈 마농지에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마농지는 단지 카페가 아니었다.
마늘과 사랑이 동시에 익어가는 공간.
짠지 한 접시가 우리의 마음을 절인 시간이 있었다.
그곳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듯 보이지만,
실은 계절마다 다른 빛과 향기를 품고 있는 곳.
우리는 그런 공간에서
서로의 온도와 마음을 맞춰갔다.
서울에선 여전히 바쁘지만,
주말이 되면 가끔 비행기를 타고
다시 마농지를 찾는다.
흑마늘 라떼를 마시고,
짠지 플레이트를 함께 먹고,
마늘밭 사이 벤치에 앉아
손을 맞잡고 사진을 남긴다.
🌇 마무리하며: 사랑은 느리게 익는다
세상에는 빠른 사랑이 많다.
DM으로 시작해서, 며칠 만에 뜨겁게 타오르고,
또 금방 식어버리는 사랑.
하지만 우리 사랑은,
짠지처럼 절이고, 숙성되고, 조용히 풍미가 배어든다.
마농지에 처음 갔을 때는
짠지가 낯설고, 마늘향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짠내가 그리워지고,
그 사람의 온기가 배어 있는 마늘향이
나의 여행, 나의 일상, 나의 연애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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