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날 기억나?”
“어떤 날?”
“우리 둘이, 아무 계획 없이 기차 탔던 날.”
나는 피식 웃었다.
“강릉 갔던 날?”
“응. 바다도 보고, 그냥 걷기만 했는데… 왠지 모르게 행복했던 날.”
“그러고 보니, 그날 사진도 한 장 없네.”
“맞아. 아예 안 찍었잖아.”
“근데… 이상하지?
그 어떤 사진보다 선명하게 기억나.”
그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기록되지 않았기에, 더 내 마음에 깊이 남은 것 같아.”
기록되지 않은 날들이, 왜 더 기억에 남을까?
요즘은 뭐든 다 사진 찍고,
영상으로 남기고,
스토리로 공유하곤 한다.
맛있는 음식도,
예쁜 하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순간도.
하지만 그날,
우리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강릉역에 내려서 바로 앞 편의점에서
뜨거운 컵라면 먹었던 거, 아직도 생각나.”
“하하, 그때 나 입천장 데였는데.”
“맞아. 근데 그거 사진 없잖아.”
“없지. 근데… 그 웃긴 장면은 지금도 생생해.”
“기록 안 해도, 우리 마음속엔 남아 있잖아.”
"찍지 않고도 기억하는 법, 우리가 배우고 있어"
그날 강릉 바다 앞에 앉아
둘이 아무 말 없이 물결만 바라보던 그 순간,
우리는 카메라 대신 서로를 봤다.
“그때 네 옆모습이 참 좋았어.”
“그럼 왜 사진 안 찍었어?”
“눈으로 찍었지. 마음에 저장.”
“어우… 오글거려.”
“근데 진짜잖아.”
“…고마워.”
나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느끼며 속삭였다.
모든 걸 남기지 않아도
진짜 소중한 건 스스로 남는다는 걸,
우리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
“그날… 노을 보면서 빵 먹었던 카페 기억나?”
“응. 주황색 하늘에 유리창 비친 너 얼굴.
그게… 제일 좋았어.”
“그때 찍은 사진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까?”
“아니.
그 순간은 그 순간으로 좋았어.
남한테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우리 둘만 좋았으면 됐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남기지 않아서 더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서로의 기억에 담아가는 중이었다.
나만 알고 싶은 날들이 있다
“사진이 없으면, 나중에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나중에 어떻게 추억할까?”
“글쎄… 그냥 지금처럼.
가끔 이렇게 너랑 앉아서 얘기하다 보면,
잊힌 줄 알았던 날들이 다시 떠오르니까.”
“그날 먹은 빵 이름은 잊어도,
너의 웃음은 잊히지 않더라고.”
“…이상하게 자꾸 감동 주네, 요즘.”
“네가 예민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어쨌든…
고마워. 그날을 기억해줘서.”
기록되지 않은 사랑이 더 순수하다
요즘은 SNS 속 연애가 화려하다.
여행 사진도 많고,
커플룩도 맞추고,
‘#럽스타그램’도 자랑처럼 달린다.
우린 그 반대였다.
예쁘게 찍은 사진도 없고,
공유한 영상도 없고,
좋아요 수를 따져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있고,
같은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그거면,
사랑엔 충분하지 않을까.
나중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어쩌면 먼 훗날,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연애할 때는
사진이 별로 없단다.”
“왜요?”
“그땐 사진보다 서로를 더 자주 봤거든.”
“그럼 그 시절은 어떻게 기억해요?”
“눈으로, 마음으로, 대화로.”
그 말이 언젠가
우리의 연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보여주지 않아 더 진짜였던 사랑
“가끔은 내가 더 예뻐 보이는 날,
사진 찍고 싶기도 해.”
“응, 찍어줄게.
근데 우리끼리만 갖자.”
“응. 그것도 좋아.”
우리는 오늘도
같이 걷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웃는다.
그 어떤 SNS 기록 없이도,
사랑은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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