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그 여름, 얼음물보다 더 시원했던 마음》

히야121 2025. 7. 7. 17:52

 

 

“물 좀 드릴까요, 어르신?”

나는 얼음물병을 조심스레 내밀며 말했다. 그 순간, 땀에 젖은 어르신의 주름진 얼굴이 찡긋하며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얼음 수건을 들고 있던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물 한 병에 이런 따뜻한 마음까지 담기면, 오히려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따뜻해지겠어요.”

그날, 우리는 그렇게 처음 마주쳤다. 38도를 넘나드는 그 해 여름, 나는 폭염 자원봉사 활동 중이었고, 그는 다른 구청 소속 봉사팀 소속이었다. 각자의 기관은 달랐지만, 봉사의 목적은 같았다. 뜨거운 햇볕 아래 쓰러질까 걱정되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안부를 묻고, 얼음물과 부채, 그리고 시원한 물티슈를 나눠드리는 일이었다.

“여기 손수건이요,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처음엔 서로 눈인사만 건넸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각자 맡은 구역도 달랐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사람과 같은 시간대, 같은 골목길에서 마주쳤다.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또 만나네요.”
“그러게요. 오늘은 북문 쪽 맡으셨나 봐요?”
“네, 북문 3통 쪽이에요. 여긴 아직도 에어컨 없는 집이 많아서요…”

그가 들고 있던 손수건에 눈길이 갔다. 낡은 체크무늬 손수건이었는데, 어르신 한 분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집에 돌아가서도 쓰세요. 더울 때 물 적셔서 이마에 얹으면 좋아요.”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란 게, 꼭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작은 천 조각에 스며든 진심이, 나를 감동시켰다.

하루의 끝, 같이 마신 편의점 아이스커피

그날 하루 자원봉사가 끝난 후, 햇살은 여전히 따갑게 느껴졌지만 우리는 말없이 인근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무 말 없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내게 아이스커피 한 잔을 건넸다.

“더우니까, 좀 식히고 가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오늘 진짜 덥더라... 얼굴까지 다 탄 것 같아요.”

“음… 그건 제가 태양보다 더 뜨거워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으응?”

“농담이에요. 하하.”

그의 유쾌한 농담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편의점 앞 파라솔 아래, 두 개의 아이스커피 사이로 불어오는 저녁바람은 그제야 조금 시원했다. 말없이 땀을 흘리고 누군가를 챙기고, 그런 하루 끝에 마주한 이 순간이 내겐 너무도 따뜻했다.

“왜 이런 활동을 하세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며칠 뒤, 나는 그와 같은 팀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평소엔 따로 움직이던 인원들이 이번엔 한 데 모여 어르신 댁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가 먼저 대화를 걸었다.

“어릴 적 할머니랑 단둘이 살았거든요. 더운 여름, 선풍기 하나로 버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서…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도, 뭔가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싶어요.”

그의 말엔 어떤 울림이 있었다.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뿌리 깊은 기억과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 자꾸 생각나요. 당신요.”

“…갑자기요?”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도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웃게 되더라고요.”

우산 한 자락 나눠쓰던 날

폭염은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 날 오후,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리 둘 다 우산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자그마한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혼자 쓰긴 작고, 둘이 쓰긴 너무 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눠 써요. 더 젖는 쪽이 사랑받는 쪽이라던데요?”

“그건 좀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그럼… 반반 젖을까요?”

비는 소낙비처럼 퍼붓고, 우리는 어깨가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걸었다. 그날, 나는 비보다 마음이 더 젖었다. 따뜻하게.

“우리 봉사 끝나고도, 계속 만나면 안 돼요?”

자원봉사는 여름 한정 활동이었다. 8월 말이 되면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점점 더 선명해져감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 뜨거운 여름이 끝나면, 우리도… 그냥 봉사자였던 사이로 남을 수도 있겠죠?”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요. 우리는 처음엔 봉사로 만났지만, 그 사이사이 마음을 나눴잖아요. 봉사가 끝나면 우리 관계도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진짜 시작 아닐까요?”

그의 얼굴에 안도와 웃음이 동시에 번졌다. 나는 그 웃음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럼… 다음 주에는 같이 얼음물 말고, 아이스크림 어때요?”

그해 여름,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그 해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지구 온난화니, 열대야니, 역대급 더위니… 뉴스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폭염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 여름은, 가장 시원했던 계절로 남아 있다.

누군가를 향한 작은 배려, 시원한 물 한 병, 젖은 손수건, 그리고 나눠 쓴 우산 속 따뜻한 대화들.

우리는 자원봉사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알아갔고, 더위보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안았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여름이 오면 우리는 함께한다. 때로는 얼음물을 준비해 거리로 나서고, 때로는 함께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지난 이야기를 나눈다.

“당신 덕분에, 여름이 좋아졌어요.”

“나도요. 여름이 오면 당신이 생각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