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밀리터리 레이션으로 이어진 인연, 군인과의 연애 그리고 결혼 이야기》

히야121 2025. 6. 26. 17:39

 

“처음엔 그냥 군용 식량이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그 맛이 자꾸 생각나더라고.”
– 어느 날, 스팸볶음밥을 먹으며


1. 처음 그를 만난 건… ‘비상식량 박람회’에서였다

요즘 세상, 아무 일 없어도 대비하는 건 ‘센스’가 된 시대다.
그래서 나도 친구 따라 ‘비상식량 박람회’라는 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재미 반, 호기심 반.

각종 동결건조식, 통조림, 전투식량까지 그야말로 온갖 생존식이 진열되어 있었고, 시식 코너도 다양했다.
내가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름 아닌 ‘밀리터리 레이션(전투식량)’ 코너.

“어, 이거 진짜 맛있는데요?”
“그쵸. 실제 현역 군인들이 먹는 식단이라, 생각보다 퀄리티 괜찮습니다.”
“아… 혹시 군인이세요?”
“네, 맞습니다. 육군 15사단, 정보통신병과 김진영 병장입니다.”

이름, 계급, 그리고 눈웃음.
그날, 나는 밀리터리 레이션보다 그의 눈웃음에 훨씬 더 큰 인상을 받았다.


2. 스팸볶음밥보다 따뜻했던 문자 하나

그날 이후, 진영 씨와 몇 번의 DM을 주고받다 자연스럽게 카톡 친구가 되었다.
공손하지만 다정했던 말투.
짧지만 성의 있던 문장.
그리고 무엇보다, 매번 꼭꼭 챙겨주던 안부 인사.

“오늘 날씨 갑자기 추워졌어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스팸볶음밥은... 아직도 맛있게 드시나요?”

“네. 이상하게요, 그 이후로는 스팸볶음밥 먹을 때마다 생각나요.”
“저도요. 그날 그 전투식량 앞에서 웃던 분이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우린 비공식적으로 ‘연락을 자주 하는 사이’가 되었다.


3. 휴가 나올 때마다, 한 끼를 같이 먹는 관계

그의 휴가는 짧고 귀했다.
그럼에도 매번 나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와줬다.
서로의 동네 중간쯤, 대방역 근처 작은 식당에서 우린 종종 만났다.

“그래서 오늘은 뭘 먹고 싶으세요?”
“음… 전투식량 중에서도 괜찮았던 게 뭐였죠?”
“어? 혹시 오늘도…?”
“네, 레이션 느낌 나는 거 먹고 싶어요. 그게 우리 시작이잖아요.”

그가 해줬던 얘기 중 잊을 수 없는 말이 있다.

“군 생활 중에 가장 따뜻했던 순간이 있어요.
레이션을 먹으며 당신 생각을 했던 어느 밤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그가 전투식량을 꺼내 먹을 때마다 내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울컥했다.


4. 전역 후에도 우리는 ‘전투식량’을 먹었다

진영 씨가 전역한 날, 우린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 비가 오던 어느 봄.

게스트하우스에서 불도 제대로 켜지지 않는 캠핑용 버너 위에
전역 기념으로 가져온 마지막 ‘전투식량’을 함께 데웠다.

“이제 이거, 마지막이에요.”
“전역이니까요?”
“아니요. 이제… 당신이 내 일상이 됐으니까.”

그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어깨에 조용히 기대기만 했다.
소고기덮밥의 따뜻한 향, 그리고 그의 손등에서 전해지던 체온.
그 모든 게 그날은 전투식량이 아닌 ‘사랑식량’처럼 느껴졌다.


5. 우리의 결혼식에는 ‘전투식량’이 있었다

1년 뒤, 우리는 결혼했다.
작고 소박한 야외 결혼식.
부케 대신 ‘미니 전투식량 박스’를 증정한 독특한 웨딩.

하객들은 박장대소했지만, 진영 씨의 말에선 진심이 묻어났다.

“우리를 이어준 게 바로 이것들이니까요.
고마워요, 전투식량. 그리고, 당신.”

결혼식 후엔 실제로 우리가 처음 만난 ‘비상식량 박람회’에 다시 찾아가
기념으로 전투식량 몇 개를 사서 신혼여행 가방에 넣었다.
하와이 해변에서 열어 먹은 그 소고기덮밥…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6. 아이가 태어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비상식량'을 챙긴다

결혼 3년 차.
이제는 우리 둘이 아닌 셋이 되었다.
아이 이름은 ‘소율’.
한글 뜻으로는 ‘작은 리듬’.
우리의 인연처럼, 예상치 못한 리듬 속에서 생긴 귀한 존재다.

“자기야, 이거 레이션 아직 있어?”
“응. 내가 애기 재우고 올게. 그때 하나 데워먹자.”

오늘 밤도, 우리는 소파 위에 나란히 앉아
소고기죽 레이션 하나를 반씩 나눠 먹는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말한다.

“우릴 처음 이어준 게 뭐였지?”
“그거… 스팸볶음밥 레이션.”
“맞아. 이 맛… 참 고맙다.”


✨ 사랑은 때로 전투식량처럼 다가온다

사랑은 대단한 이벤트로 시작되지 않는다.
가끔은 스팸볶음밥처럼 따뜻하고 소박한 향기로 다가온다.
군인과의 사랑도, 전투식량 같은 순간 속에서 자란다.

단단하고, 질기고, 쉽게 상하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우리가 나눈 사랑의 맛이었다.

오늘도 냉장고 맨 위 칸에는
'그 시절을 기억하는 전투식량'이 한 통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