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을 닮은 아빠, 삶을 닮아버린 나
― 그의 멜로디는 끝났지만, 나는 그 리듬 위를 걷고 있다
[프롤로그 : 그 사람은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를 떠올리면
항상 한 손엔 마이크가 있었고,
다른 손엔 내 손이 있었다.
그는 특별히 유명한 사람도,
앨범을 수십 장 낸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색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소리로
삶을 꿰매며 살아낸 사람.
[1. 아빠는 음악처럼 살았다]
아빠의 하루는 늘 리듬이 있었다.
아침엔 맥박처럼 분주하고,
저녁엔 재즈처럼 느긋했다.
비 오는 날엔 블루스 같았고,
맑은 날엔 경쾌한 셔플처럼 웃었다.
“삶은 곡이야.
멜로디만 있는 노래는 지루하고,
가사 없는 인생은 텅 빈 거거든.”
나는 그 말을
어릴 땐 그냥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의 철학이라는 걸 안다.
[2. 기억 속 첫 음, 그와의 노래방]
“아빠, ‘보고 싶다’ 불러줘.”
“너 그거 들으면 운다며.”
“그래도 듣고 싶어.”
아빠는 늘 노래방에서
조금은 촌스럽게,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떤 가수보다 감동적이었다.
그건 기교 때문이 아니었다.
노래할 때마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불렀다.
그리고 가장 많이 불러준 사람은
바로… 나였다.
[3. 앨범이라는 이름의 추억]
함께 만든 우리만의 앨범.
‘소리로 남긴 사랑’이라는 제목은
지금도 내 책상 옆을 지킨다.
지금 다시 들어보면
음정은 엉망이고
리듬은 삐걱거리지만
그 안엔
우리가 살아낸 시간,
웃고, 울고, 사랑하고,
노래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노래 한 곡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줬던 시절.
그 시절의 나는,
그의 삶을 노래라고 생각했고
지금의 나는,
그의 노래를 인생이라 여긴다.
[4. 아빠의 마지막 무대 이후]
은퇴 무대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르고
조용히 내려온 아빠는 말했다.
“이제 네가 부를 차례야.”
나는 그 말이
단순히 노래를 이어가라는 뜻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건
“이제 너의 인생을 노래하라”는 말이었다.
무대는 달라졌지만
나는 매일
일터라는 스테이지에서
아빠의 리듬을 따라 걷는다.
책상 앞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5. 닮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닮아가고 있다]
어릴 땐 아빠가 답답했다.
기회가 와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던 사람.
“왜 더 나가지 않았어요?”
“왜 서울로 안 올라갔어요?”
그때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네 웃음소리가 제일 큰 무대였어.”
그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비슷한 결정을 내릴 때
자주 아빠를 떠올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결국,
그의 선택을 가장 닮아버렸다.
[6. 나도 지금은 노래하는 사람이다]
물론, 진짜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나도
매일같이 ‘말’을 노래처럼 쓰고,
‘기억’을 가사처럼 새긴다.
가끔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할 일이 생기면
심장이 뛴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말해주던 한 마디.
“떨려야 좋은 거야.
그건 너도 지금 무대에 있다는 뜻이니까.”
그 말 한마디로
나는 수많은 무대를 버텨냈다.
그는 무대를 떠났지만,
나는 그의 무대 위를 걷고 있다.
[7. 아빠의 목소리가 그리운 밤이면]
요즘은
문득문득 CD를 다시 튼다.
그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딱히 엄청난 가창력은 없지만,
그 한 소절에
내가 자란 집,
내가 사랑받은 시간,
그리고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된 이유가 담겨 있다.
“딸, 오늘도 수고했어.”
그 한 마디를
이젠 노래가 대신해준다.
[8. 음악을 닮은 아빠, 삶을 닮은 나]
나는 이제 안다.
그가 가수가 아니었어도,
그는 음악처럼 산 사람이었다는 걸.
박자를 맞추고,
쉼표를 아끼지 않고,
때로는 전주를 길게,
후렴구는 길게 끌어안으며.
그렇게 그는
우리 가족을 한 곡처럼 지휘했고
그 멜로디는 지금도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이제는 내가 그 리듬을 잇는다.
아빠가 걸었던 인생의 리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