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7화 – 너는 깍둑썰기 수박, 나는 숟가락으로 퍼먹는 수박》

히야121 2025. 7. 7. 18:03

 

 

그날 밤, 냉장고에 붙은 쪽지는 아직도 떼지 않았다.
“찌개 데워 먹어요. 오늘 아침은, 내가 미안해요.”
그 짧은 문장이, 이틀 전 우리를 다시 식탁에 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름의 끝자락.
선풍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고,
밖은 무더운 열기 대신 조용하고 끈적한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퇴근길에 슈퍼에서 수박 한 통을 샀다.
반값이었다. ‘이 가격에 이 크기라니’ 하며 웃었지만,
사실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자를게요. 네모반듯하게.”

그는 수박을 보면 늘 정성스럽게 깍둑썰기를 했다.
정육면체처럼 네모나게 잘라, 투명한 유리볼에 정갈하게 담아냈다.
수박이 아니라 루비 조각 같았다.

반면 나는…
반으로 갈라서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는 타입이었다.
얼굴이 수박 껍질에 가까울 만큼 들이대고,
과즙 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게 시원하고 맛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함께 수박을 먹을 때면 늘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렇게 퍼먹으면 껍질 가까운 부분은 남기잖아요.”
“근데 그게 맛없잖아요. 난 중심이 좋아.”
“그래도 다 먹어야지. 아깝잖아요.”
“그럼 깍둑썰기 한 당신이 나중에 남은 부분 처리해줘요.”
“… 진짜 그러기만 해봐요.”
“진심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다투듯 놀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접시

그날 밤,
나는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반을 잘랐다.
그리고 한쪽은 정갈하게 네모로 썰고,
다른 한쪽은 동그랗게 푹푹 파서 두 개의 그릇에 담았다.

하나는 깍둑썰기,
하나는 퍼먹기용.

식탁에 올려두자 그가 놀라듯 웃었다.
“이게 뭐예요?”
“당신 스타일, 내 스타일. 오늘은 양보 없이 둘 다.”

그는 내 그릇을 보며 혀를 찼다.
“진짜 이렇게 퍼먹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있죠. 여기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이렇게 먹었어요.”

그는 수박을 한 조각 입에 넣고 씹다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랑 살아보니까…
정말 사람마다 다른 게 많구나 싶어요.
근데, 그게 점점… 재미있어져요.”

나는 그 말에 웃었다.
“나는 아직도 이해 안 가는 거 많은데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 김치찌개에 당면 넣는 거.”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요?”
“고기보다 더 많이 먹잖아요.”
“당면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입맛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가끔은 기분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게, 사랑이더라.

깍둑썰기 vs 퍼먹기, 다름을 사랑하는 방식

그는 깍둑썰기 수박을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퍼먹은 수박을 스푼으로 떠서 그 입에 갖다 댔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살짝 침범하는 놀이를 시작했다.

“당신, 오늘 나한테 퍼먹기 강요했어요.”
“당신은 나한테 정육면체 삼키기 시켰잖아요.”

“근데… 맛은 똑같다?”
“아니, 당신이 떠주는 건 조금 더 달아요.”

조금 유치하고,
조금 바보 같고,
조금 닮아가는 밤이었다.

사랑은, 같은 걸 다르게 먹으면서도 함께 웃는 일

사랑이란 뭘까.
서로의 차이를 고치려는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안고 살아가는 일.

냉장고 안의 수박처럼, 같은 재료를 다르게 썰고 먹어도
결국 같은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내는 것.

그게 바로,
깍둑썰기 당신과 숟가락 나 사이의
작고 단단한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