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서로의 냄비에 마음을 담기 시작한 우리》
“이거 된장 너무 많이 넣은 거 아니에요?”
“아니야. 우리 엄마 된장찌개는 원래 이 정도야.”
“아니, 이건 거의 염전 수준인데…”
한 숟가락 떠먹고 얼굴을 찌푸린 나를 보고 그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지금, 그의 자취방 작은 부엌에서 함께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한쪽에선 쌀 씻은 물이 흐르고, 다른 쪽에선 호박이 어설프게 채 썰어져 있다.
된장찌개 하나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꼭 오래된 부부 같았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밥’이 아닌 ‘같이 요리’를 했다
이전까지는 그가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먹거나,
편의점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나눠 먹거나,
간단히 ‘함께 먹는 일’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우리는 장을 같이 보고, 양파를 같이 까고, 호박을 같이 썰었다.
그리고, ‘된장찌개’를 같이 끓이기로 했다.
그야말로 처음으로, 우리의 냄비에 마음을 담기 시작한 날이었다.
“왜 된장찌개예요?”
내가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자취 시작하고 제일 처음 해본 요리가 된장찌개였어요.
맨날 라면만 먹다가, 그 냄비에 된장 한 숟갈 넣고 물 끓이는데…
그 향에서 엄마 집 부엌이 떠올랐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누구에게나 향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하나쯤은 있듯,
그에겐 된장찌개 냄새가 엄마의 냄새였던 거다.
냄비 하나를 놓고 서로 배워가는 사이
나는 냄비에 물이 너무 많다고 했고,
그는 내 말이 맞다고 하면서도 자꾸 국자에 된장을 더 풀었다.
그러다 결국, 찌개는 반쯤 국물, 반쯤 소금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찌개를 앞에 두고 앉은 우리는 참 행복해 보였다.
찬밥을 데워 넣은 밥그릇 두 개,
그 옆에 김치 한 접시,
서로 앞치마도 없이 수건 하나 허리에 찬 채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되게 오래된 커플 같죠?”
“음, 아니. 방금 싸운 부부 같았어요.”
“그치만 싸우면서도 같이 국 끓이는 사이.
그게… 진짜 같이 사는 거 아닐까요?”
그는 요리를 못했지만, 마음은 깊었다
그는 사실 요리에 영 소질이 없었다.
계란도 잘 못 깨고, 파도 삐뚤빼뚤 썰고,
소금인지 설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늘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끓이려면 물 몇 컵?”
“간은 언제 해야 돼?”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면, 싱겁게 하는 게 맞겠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진짜 중요한 건 요리 실력이 아니라, 함께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구나.
그가 말하던 “우리 냄비”
밥을 다 먹고 나서 그가 말했다.
“우리, 각자 살던 냄비는 이제 그만 쓰자.
이제부터는 한 냄비에 같이 요리하자.”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합칠 수도 없잖아요.
내 냄비는 인덕션용이고, 당신 건 가스용이잖아요.”
“그러니까 새로 하나 사요.
우리가 같이 쓰는, 우리 냄비.”
그 말이 어쩌면, 동거에 대한 가장 은유적인 고백이었다.
‘각자 다른 방식의 삶, 다른 환경, 다른 온도’로 살던 두 사람이
이제 같은 불에, 같은 국을 끓이며 살아보자는 제안.
나는 대답했다.
“…그럼 그 냄비, 코팅 잘 벗겨지지 않는 걸로 사요.
오래오래 쓰게.”
작은 부엌에서 시작된 우리의 미래
그날 밤, 우리는 싱크대에 설거지를 쌓아두고,
거실도 아닌 자그마한 식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나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고,
그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같이 사는 거,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몰라요.
하지만… 같이 요리하고, 같이 먹고, 같이 웃는 일이
점점 더 좋아질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싸우고도 같이 밥 먹고,
속상해도 된장찌개 다시 끓이게 되겠죠.”
“그때도 당신이 파는 좀 예쁘게 썰어줘요.”
“그땐 당신이 계란도 잘 깨게 되길 바랄게요.”
우리는 그렇게,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 앞에서도 서로를 향해 웃을 수 있는 사이.
그게 우리가 함께 살아보고 싶은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