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사장님과 배달 기사의 사랑 이야기: 어느 여름날, 마음이 배달되었습니다
"아, 또 왔네요.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네, 역시 더우니까요. 얼음 가득 넣을게요."
서울 외곽의 조용한 골목. 한 켠에 자리한 작은 독립 카페. 이름은 더 포레스트. 이 카페엔 유난히 자주 배달을 시키는 단골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서. 혼자 카페를 운영하며 고요한 일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커피를 매일 배달하는 한 사람, 배달기사 민석.
처음엔 단순한 주문과 전달. 그랬던 것이 차츰 눈인사, 짧은 대화, 그리고 이름을 주고받는 사이로 바뀌었다. 무더운 여름이 오고, 민석은 어느 날 무심코 물었다.
"사장님, 혼자 일하시기 힘드시죠? 여름엔 더 덥고 바쁠 텐데."
윤서는 잠깐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가끔은... 정말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죠. 근데 또 이상하게 계속 하게 돼요."
민석은 그날 밤, 윤서가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 커피가, 이 사람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무심함 속에 피어난 작은 온기
그들의 일상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서는 어느 날부터인가, 주문란에 작은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 "오늘은 바람이 기분 좋네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 "힘들면 잠깐 카페에 앉아 쉬었다 가도 괜찮아요."
처음에는 단순한 친절이라 생각했던 민석은 점점 그녀의 말에 기대기 시작했다. 어느 무더운 오후, 그는 배달을 마친 후 잠시 앉아 물을 한 잔 마시며 말했다.
"사장님, 사실 저 요즘 이 가게 올 때가 하루 중 제일 좋습니다."
윤서는 컵을 닦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작은 고백
가을이 되던 어느 날, 민석은 용기를 냈다.
"사장님, 제가...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일 끝나고 커피 한 잔 같이 마실 수 있을까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윤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근데 오늘은 제가 살게요. 여기는 제 가게니까요."
그 날 저녁, 카페 한 구석에 앉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었다. 민석은 물류 회사에서 정규직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배달을 택한 이유를, 윤서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이 골목에서 카페를 차린 이유를.
"어쩌면 우리 둘 다, 뭔가에서 도망쳤는데... 여기서 만났나 봐요."
숨겨졌던 진심
겨울 초입, 민석은 점점 바빠졌고, 카페 방문도 줄어들었다. 윤서는 기다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문득문득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오랜만에 나타난 민석. 무언가 고민 끝에 꺼낸 말.
"윤서씨, 저 사실... 다른 지역에서 배달기사 매니저 제안을 받았어요. 주 5일 정규직. 안정적이고... 좀 더 나은 조건이죠."
윤서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소조차 어색하게 굳었다.
"그럼... 가시게 되는 거예요?"
민석은 대답 대신 커피잔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윤서씨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오픈 결말의 시작
며칠 뒤, 윤서는 주문 앱을 열었다. 민석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배달원이 지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커피를 내리며 생각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면... 달라졌을까? 아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는데... 그럼에도 서로를 놓친 걸까.’
그날 밤, 윤서는 손글씨로 쓴 작은 편지를 배달 봉투 안에 넣었다.
민석 씨에게.
매일 당신이 오던 오후가 그립습니다. 고마웠어요. 당신 덕분에 이 카페는 한동안 더 따뜻했어요. 어디에 있든, 늘 응원할게요.
그 편지가 그에게 닿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몇 주 뒤, 카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사장님, 커피 두 잔 가능할까요? 하나는 예전처럼 아이스로. 그리고 하나는... 오늘은 뜨겁게."
윤서는 고개를 들었다. 민석이 웃고 있었다.
마무리: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들의 관계는 이름 없는 계절처럼 애매하다. 친구도, 연인도 아닌 그 어딘가. 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마음은 어느 날, 배달되어 온다는 것. 그리고 어떤 마음은... 문을 열고 다시 찾아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