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큰애기와 서울 삼돌이》2화 – 서울 삼돌이가 울산 장터에서 길을 잃다
1. “오늘은 울산다운 데를 보여줄게”
“오빠, 오늘은 딱 울산냄새 나는 데로 데려갈게.”
“울산냄새? 그게 뭐야?”
“장터다 장터! 진짜 울산 사람은 마, 전통시장에서 다 논다 아이가.”
서울 삼돌이는 조금 긴장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에게 ‘장터’는 왠지 낯선 단어였다.
종로 시장 몇 번 간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스마트 결제 가능’ 같은 팻말이 반겨주는 느낌이었으니까.
울산 큰애기는 아침부터 신났다.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 손엔 장바구니까지 챙겼다.
삼돌이는 반듯하게 셔츠를 다려 입고, 운동화까지 새로 꺼내 신었는데…
“오빠, 뭐 그렇게 꾸몄노. 시장 간다면서.”
“그래도… 처음 가는 데인데 깔끔하게 입어야지.”
“하이고, 저러다가 길 잃겠네…”
큰애기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된다.
2. “울산 중앙시장, 들어서자마자 문화충격”
시장 입구엔 사람, 냄새, 소리, 기운이 범벅되어 있었다.
삼돌이는 순간 움찔했다.
“와… 여긴 정말 에너지 넘치네.”
“오빠 여 그 이모 봤나. 파전 앞에서 ‘천 원 깎아줄게!’ 소리 지르던 분. 저게 울산이다.”
통통 튀는 튀김 냄새,
찌든 기름 냄새 사이로
낯선 사투리가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아지매~ 오징어 좀 더 주이소!”
“큰애기~ 이리 온나~ 이 새우장 완전 미친다!”
그녀는 손에 쥔 장바구니를 요리조리 흔들며 노련하게 시장을 누볐다.
반면, 삼돌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관광객 모드’였다.
3. “오빠, 가만있어! 저쪽에서 콩나물 무치기 사올게”
삼돌이는 그녀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잠시 콩나물 무침을 사러 간다고 하자,
그는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혹시 저희 홍어 어디 있나요?”
“거, 왼쪽으로 돌아가서 김치집 지나가면~”
“네? 왼쪽… 김치집이요…?”
그 순간, 방향감각이 사라졌다.
사람에 밀려 밀려, 삼돌이는 시장 한복판에 홀로 서게 되었다.
왠지 TV에서 본 시골잔치 현장에 떨어진 도시남 느낌이랄까.
4. “큰애기! 나 지금… 길 잃었어…”
“야… 이 오빠가 진짜…”
큰애기는 콩나물 한 봉지 들고 돌아왔다가, 그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어디 갔노! 전화도 안 받네…”
그리고 얼마 후,
삼돌이한테 톡이 왔다.
“나 지금 바나나튀김 파는 데 앞인데…”
“바나나튀김? 여서 그게 어딘데?”
큰애기는 피식 웃었다.
“진짜 서울 오빠가 울산 장터에 빠졌네 그려.”
찾아간 그녀는
튀김 냄새 나는 포장마차 앞에서
잔뜩 어색한 표정으로 있는 삼돌이를 발견했다.
“니 여 와 있었노, 혼자…”
“장터가 이렇게 넓고 복잡할 줄 몰랐지…”
그녀는 고소한 튀김 하나를 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그래서 오빠한테는 나가 꼭 필요하다 아이가.”
5. “서울 사람 눈엔 다 처음일 거야”
“이건 떡강정. 여는 김이랑 같이 묵어야 맛있다.”
“이건 무말랭이, 그냥 말린 거 아니고 간장에 재운 거.”
“이건 시장표 순대. 서울 순대랑 다르제? 당면 없제?”
그녀는 삼돌이 손에 하나씩 쥐여주며
자기 고향의 맛과 냄새, 기억을 전하고 있었다.
삼돌이는 입 안 가득 순대를 넣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진짜 맛있다… 여긴 그냥 골목마다 맛있네.”
“그래가 장터가 사는 거다. 요건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데라꼬.”
6. “카드 되나… 안 되나… 되는 거 맞지요…?”
서울 삼돌이는 시장의 ‘현금 세상’에 당황했다.
“카드 돼요?”
“아~ 내일 오이소. 그때는 될 낍니더~ 흐흐~”
“아, 네…? 그러니까 오늘은 안 되는 거죠…?”
옆에서 보고 있던 큰애기는 배를 잡고 웃었다.
“오빠, 시장에서 카드 찾는 거부터가 벌써 티 난다 아이가.”
“서울에선 요즘 포장마차도 QR 되던데…”
“하이고… 울산은 마음으로 결제하는 거라꼬!”
그녀는 삼돌이의 손목을 잡고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고구마튀김을 샀다.
“됐지? 여는 이런 맛이다.”
7.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로
작은 피크닉을 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이봉투에 담긴 순대와 유부초밥을 나눠 먹었다.
“울산 장터는 어땠노?”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젠 다음에 또 가고 싶어.”
“니 서울 스타일에 적응한 거가?”
“아니, 니 스타일에 적응한 거지.”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엔 내가 서울 가서 니네 동네 시장도 가볼게.
서울 삼돌이의 세상도 한번 보자고.”
✨ 에필로그: 길을 잃는 건 나쁘지 않아
서울 삼돌이는 울산 장터에서 길을 잃었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걸 배웠다.
사람 냄새, 소리, 음식의 온기,
그리고 무엇보다
울산 큰애기의 삶의 방식.
그는 이제 말한다.
“장터에서 길을 잃고,
너한테 길을 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