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야기(사랑)

☕ 4편. 라떼는 말이야… 다시는 안 올 줄 알았어

히야121 2025. 6. 29. 01:42

 

이번 편은 그리움이 차츰 무뎌지고, 다른 라떼에서 너를 떠올리다 잊혀져가는 그 과정을 담고 있어요.

 

“라떼 한 잔 주세요. 따뜻하게요.”

바리스타에게 주문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섞였다.
이젠 익숙한 말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유독 목이 메었다.
그 이름을 다시 말하게 될 줄 몰랐거든.
‘라떼’는… 네가 제일 좋아하던 커피였으니까.


🪞 다시는 안 마시겠다던 라떼

“너 없는 라떼는 그냥 우유지 뭐.”
헤어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친구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
친구는 웃었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너 없는 라떼는 아무 맛도 없을 것 같았으니까.
달지 않고, 따뜻하지 않고, 아무 향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뒤로 몇 달은 라떼를 마시지 않았다.
카페에서 ‘라떼’란 단어만 들어도
괜히 마음이 뭉클해져서, 다른 걸 주문했다.
카페모카, 플랫화이트, 아포가토…
심지어 라떼 비슷한 메뉴는 일부러 피했다.

“진짜 안 마셔? 그게 뭐라고?”

“응. 아직은 안 돼.”


🍂 계절이 바뀌고, 향도 바뀌고

가을이 되었다.
공기가 서늘해지고, 길가에 라떼 색깔 낙엽이 굴러다녔다.
도시의 카페들은 다시 ‘가을 한정 호박라떼’를 내걸기 시작했다.

“이번 신메뉴 드셔보실래요?”

카페 알바생이 건넨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세요.”

호박 라떼.

그건 이상하게도 너와는 전혀 닮지 않은 맛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부드러움.
약간 인공적인 달달함.
그리고 내가 전혀 몰랐던 라떼의 또 다른 얼굴.

그걸 마시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던 감정도,
사실은 반밖에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 그날, 다른 사람과 라떼를 마셨다

“라떼 좋아하세요?”

“네, 요즘은 자주 마셔요.”

소개팅이었다.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보는 자리에서, 나는 라떼를 시켰다.
옛날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

그 사람은 내 앞에 앉아 부드럽게 웃었고,
라떼 위에 그려진 하트 라떼아트를 핸드폰으로 찍으며 말했다.

“이런 하트, 요즘은 잘 안 되던데… 예쁘죠?”

“네, 예쁘네요. …그냥 라떼가 그리웠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운 건, 라떼가 아니라 네가 아니었을까?


🥄 기억이 줄어드는 속도만큼, 거품도 사라진다

라떼 위의 우유 거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기억도 그렇다.
처음엔 가득 차서 넘칠 것만 같더니,
어느새 반쯤 없어지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그때 우리, 왜 그랬을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내게
카페 안 재즈 음악만 잔잔히 답해줄 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결국은 시간이 만든다.
그 시간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도, 사랑의 무게도 달라지겠지.


🖼️ SNS에서 너를 봤다

우연이었다.
정말 우연히, 알고 지내던 친구의 스토리에 네가 있었다.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심장이 뛰지도 않았고, 화면을 닫지 않아도 되었다.

“라떼 마시고 싶다”는 너의 자막.
그리고 너의 웃는 얼굴.
어딘지 몰라도, 평화로운 오후.

그걸 보는 나의 마음도, 의외로 평화로웠다.
나는 화면을 넘기고,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날 내 앞에는 오트라떼가 있었다.
내가 요즘 가장 자주 마시는 커피.


☁️ 이제 나는 라떼를 마셔도 괜찮다

라떼는 말이야,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음료였어.
너무 따뜻해서,
너무 너 같아서,
마시는 게 버거웠던 기억의 맛.

근데 말이야,
지금은 그냥… 라떼야.

그냥 따뜻한 음료.
가끔은 하루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평범한 한 잔.
이젠 마셔도 괜찮은.

사랑은 잊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래.
커피처럼, 처음에는 쓴맛에 놀라도
자꾸 마시다 보면 부드러운 뒷맛을 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