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여 여친과의 6개월, 약정된 연애
“사랑, 그것도 대여가 되나요?”
그날, 친구는 술잔을 돌리다 말없이 내게 한 장의 명함을 건넸다.
그 명함엔 깔끔한 글씨로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연애의 빈틈, 그 허전함을 채워드립니다.”
- 렌트 러브(대여 연인 서비스)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명함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났다.
대여 여친. 6개월 약정.
그리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
🎬 1.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다
“혹시... 예약하신 분이세요?”
그녀는 정말 연기 같지 않았다.
화장도 진하지 않았고, 대본을 읽는 듯한 어색한 멘트도 없었다.
“네...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요.”
“처음이 더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냥... 진짜 소개팅이라 생각하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웃음은 절제되어 있었다.
그게 좋았다. 부담스럽지 않아서.
“그럼, 오늘은 커피 마시고 산책 정도로 괜찮으세요?”
그녀는 일정이 박힌 작은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6개월 약정. 주 1회 2시간 이상,
식사 및 카페 포함, 외부 동행 4회 선택 가능.’
나는, 사인했다.
💬 2. 대화, 인연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몇 번의 만남은 진짜 계약 같았다.
그녀는 예의 바르고, 나는 어색했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조금씩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진짜 연애는... 언제 해봤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3년 전쯤. 한 사람을 오래 만났어요. 그런데... 나는 감정이 너무 많고, 그는 너무 적었죠.”
“그래서 지금은 감정을 줄여서 일하는 거예요?”
그녀는 작게 웃었다.
“그런 셈이죠. 이렇게 일하면, 감정의 손실이 덜해요.”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서늘하게 들렸다.
‘사랑도 손실이 되나...?’
☕ 3. 커피잔 너머로 조금씩 가까워지다
우리는 매주 같은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는 늘 라떼, 나는 아메리카노.
“이제 라떼 다 떨어지면 슬프겠다.”
내 말에 그녀는 물었다.
“왜요?”
“넌 라떼 마실 때 웃잖아.”
그녀는 처음으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참을 뜸 들인 후 말했다.
“...그런 사소한 것도 기억해주는 사람, 오랜만이에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마음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 4. 다리 위에서 그녀가 묻다
한강 다리 위, 우리는 처음으로 계약 외 시간을 가졌다.
일정 외 동행, 1회 차감.
하지만 나는 그런 숫자가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면, 계약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가도 되나요?”
그녀가 불쑥 말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이런 일 오래 하다 보면, 감정을 느끼는 게 금지처럼 느껴져요.
근데... 이번엔 조금 달라요.”
나는 멍하니 강물만 보았다.
그 물 위에, 내 마음이 떠 있는 듯했다.
📦 5. 계약 연애의 한계, 그리고 진심의 충돌
6개월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어색해졌다.
그녀는 여전히 잘 웃었고, 나는 점점 말을 아꼈다.
“계약... 연장하실 건가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이 얼마나 슬픈지, 그녀는 몰랐을까.
“연장 말고, 그냥... 너랑 계속 만나면 안 될까?”
그녀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약정서를 꺼내 찢었다.
“오늘부로, 계약 종료예요. 대신... 진짜로 만나줘요.
나, 처음으로 약정 아닌 사람을 기다려 보고 싶어졌어요.”
💔 6. 그래도 현실은 가끔 냉정했다
우리는 계약이 없는 연애를 시작했다.
한 달은 좋았다.
두 달은 설렜다.
하지만 세 달쯤 지나면서,
나는 이상하게 불안해졌다.
‘그녀는 지금도 대여 여친 일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도, 나처럼 웃고 있을까?’
그 질문이 우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만둬 줘. 그 일.”
“...지금 그 말이, 사랑해서 하는 말이에요? 아니면 불안해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말없이 자리를 떴다.
이번엔 진짜 계약서도, 예정된 만남도 없었다.
📮 7. 3개월 후, 엽서 한 장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편지가 한 장 도착했다.
“당신은 나에게, 약정 이상의 사람으로 남았어요.
그래서, 그 일은 그만뒀어요.
지금은 작은 꽃집에서 일해요. 매일이 고요해요.
당신 덕분에, 나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기다릴 줄 알게 됐어요.”
편지엔 이름도, 주소도 없었다.
단지 끝에, 작은 메모 한 줄.
“언제든, 꽃 사러 와요.
그럼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사랑이 계약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사랑은 약속에서 시작하는데,
그 약속이 ‘기한’으로 바뀌면… 그건 정말 사랑일까?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계약으로 시작한 감정도, 진심을 만나면 변한다는 걸.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엔 언제나 작은 희망이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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